지난달 30일 베이징시 제2중급법원은 택시를 강탈, 왕푸징(王府井)거리를 질주해 3명의 행인을 숨지게 하는 등 9명을 사상케 한 '농민공(農民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또 피해자와 가족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도 103만 위엔(1위엔=120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사가 선고하는 순간, 피고인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기자들의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쉬에도 그는 줄곧 야릇한 냉소(冷笑)를 멈추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추석을 일주일 앞둔 9월 11일 오전. 베이징에서도 가장 붐비는 번화가로 소문난 왕푸징 KFC 앞길. 허난(河南) 출신의 농민공 아이쉬챵(艾緖强·32)은 타고 온 택시기사를 찔러 숨지게 하고 택시를 빼앗아 왕푸징 보행가로 차를 몰아 행인 2명을 숨지게 하고 6명을 다치게 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고 체포됐다.
그는 체포 직후 "불평등한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사회도덕이 상실됐기 때문에 하늘을 대신해서 내가 도를 행하려고 한 것뿐이다.(替天行道)" 라는 자기 변호도 덧붙였다. 수호지(水滸志)에 나오는 양산박 도적떼들이 내건 명분과도 같다. 왜 왕푸징을 택했느냐는 질문에는 "왕푸징은 중국의 가장 번화한 곳이자 부자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나 스스로도 부자가 되고 싶었지만 학식도 없고 능력도 없어 이 사회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볼 수 없어 왕푸징의 부자들과 함께 죽겠다고 나섰다."는 아이쉬챵. 그에게 왕푸징은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부자들의 땅으로 비춰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부자들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처지의 '농민공'과 서민들이었다.
그에게 개혁개방 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중국은 희망의 땅이 아니라 '좌절의 땅'일 뿐이다. 지난해 광둥(廣東)성 션전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중국은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범죄들이 빈발하고 있다. 경제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도농 간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농민과 농민공들의 불만은 그만큼 더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태어난 아이쉬챵은 이혼을 하고 혼자서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으로 와서 일을 했지만 몇차례나 임금을 받지 못하는 등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관련기관에 고발도 했지만 기껏 한 차례 못 받은 임금의 일부인 700여 위엔을 돌려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복수를 준비해왔다.
지난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자회의가 '신농촌운동'을 제창하면서 도농 간의 빈부격차 해소와 지역간 균형발전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설정한 것도 이같은 불안정한 중국사회의 미래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들도 피고인이 법정에서 보인 '냉소'에 대해 진지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성장을 앞세워 앞만 보고 달려 왔지만 이제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자."고 지적하고 나섰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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