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육군 원사로 행정 보급관에 근무할 때였다. 해마다 겨울이면 동계작전 능력배양을 위한 야외 혹한기 훈련을 실시했는데, 그 해도 어김없이 훈련을 나갔다. 중대원들은 하루 종일 장거리 행군 끝에 석양이 뉘엇뉘엇 기울 무렵에서야 목적지인 훈련장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야전삽으로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파내며 개인호를 구축해야만 했는데, 그때 낯선 소형 트럭 한 대가 달려와 내 앞에 멈춰섰다. 곧이어 조수석에서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내렸다.
그 할머니 말씀이 "이 보게, 군인 양반! 저것 좀 드시고 하시게"라며 삶은 돼지고기와 떡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순간 망설이는 내게 할머니는 질책을 하듯 다시 권하기를 "돼지고기는 식으면 맛없으니 빨리 나눠 먹어"하는 것이다.
덕분에 중대원들은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훈련이 끝난 며칠 후, 수소문 끝에 할머니 집을 찾게 되었고 거기서 평생을 잊을 수 없을 말씀을 들었다. "나라가 있어야 군인도 있고, 자신도 있을 수 있다."
할머니는 전쟁미망인이었다. 가슴 속 깊이 남은 한을 달래기 위해 훈련을 나오는 군인들만 보면 음식을 제공해 왔으며 그 날은 마침 할머니의 칠순이었다고 한다. 칠순잔치도 마다하고 그 비용으로 돼지고기와 떡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가슴이 찡했다. 그리 넉넉지 못한 형편이지만 군인들이 훈련을 나올 적마다 위문을 오시는 할머니, 진정 '이 나라의 할머니'였다.
김완룡(대구시 남구 대명8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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