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규리 作 '풍경이 흔들린다'

풍경이 흔들린다

이 규 리

어금니 하나를 빼고 나서

그 낯선 자리 때문에

여러 번 혀를 깨물곤 했다

외줄 타는 이가 부채 하나로

허공을 세우는 건

공기를 미세하게 나누기 때문,

균형은 깨지기 위해 있는 거라지만

그건 농담일 게다

한 쪽 무릎을 꺾으면 온몸이 무너지는 건

짐승만의 일이 아니다

다친 무릎 끌며 가서 보았다

인각사 대웅전 기둥이

균형을 위해 견디고 있는 것을,

기우뚱해 있는 저 버팀목까지도

서로 다른 쪽을 위해 놓지 않고 있는 믿음을,

그 처마 끝에서

풍경은 그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공기를 조절하며 처마를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소리 내어 기둥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동일한 가치로 서로 균형을 유지한다. 이를테면 '무릎'과 '온몸'이 같은 가치로 균형을 잡는다. 그래서 '한쪽 무릎을 꺾으면 온몸이 무너지는' 것이다. '외줄 타는 이'는 '부채 하나로' 균형을 잡아 '허공을 세우지' 않는가. 결국, 자그마한 '부채'와 우주의 일부인 '허공'이 동일한 가치다. 처마 끝 '풍경'도 부속품이 아니라 '처마를 들어 주고' 있는 존재다. 다시 말해 균형을 잡아 '인각사'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풍경'이 있기에 '인각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너'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너'는 '나'만큼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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