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대한민국의 모든 스크린과 모니터는 작은 축구공 하나 만을 추적하는 동영상을 내보냈고 우리는 그것을 가슴 조이며 지켜봤다.
이겼다. 월드컵 원정경기 사상 첫 승리를 만끽한 한국이 16강 진출의 청신호를 밝혔다. 뛸듯이 기쁜 게 아니라 실제로 방방 뛰면서 기뻐했다. 그것도 극적인 역전승었으니.
하지만 한 시간 뒤에 벌어진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기를 보며 1승의 감격에 도취해 있을 사정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지난 2002년의 한국보다 지금의 한국은 한 수 아래라는 독일 현지 언론의 따가운 지적, 베켄바워 월드컵조직위원장이 역전하고서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에게 "한국팀은 전반에 파업을 했냐"고 건낸 농담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경기 초반 선수들의 긴장에서 오는 부정확한 패스와 문전 처리 미숙은 경기를 보는 우리를 내내 불안하게 했다. 결국 전반 31분 롱패스를 이어받은 쿠바자의 기습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불길한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경기 전 애국가가 두 번 이나 울려 퍼졌고 전날의 히딩크 학습효과도 있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의 부푼 가슴은 한 치도 줄지 않았다.
그러다 줄곧 집중 마크를 당하던 박지성이 후반에 만든 기회를 잘 살려 2골이나 뽑아냈다.
그 이후 수적 우위와 분위기상 경기의 주도권이 완전히 우리에게 넘어오고 아데바요르마저 경기를 포기하는 눈빛이 역력한데도 우리 선수들의 경기는 왠지 2%가 부족해 보였다.
축구의 본질은 카타르시스이고 우리는 이 월드컵을 통해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갈망한다. 월드컵 사상 최다 골을 겨냥할 수 있는 막판 프리킥의 기회를 포기하고 공을 뒤로 돌린 대목은 전술적 선택으로 이해하지만 지난 2002년의 강인함과 투혼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더구나 총력전으로 나올 게 뻔한 프랑스와 스위스를 상대로 이런 느슨함과 여유는 도무지 통할 것 같지도 않다.
월드컵 축구는 말 그대로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이며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국내에서 하는 경기내용으로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고 우리 국민 역시 극적인 감격의 한편에는 허전함도 자리하고 있음을 아드보카트 감독이나 선수들은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래서 높이 손으로 받쳐 든 우승컵 안에 무엇보다도 빠르고, 단순하며, 꾸밈없는 온 자연이 채워지길 기대하고 희망하네."라고 한 독일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축구에 관한 시를 떠올리며 대한민국의 신화가 19일에도 24일에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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