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저게 뭐야?" "응, 잡초."
'에잉! 농부들이 땀 흘려 심은 모가 한낱 잡초라고?' 하지만 어쩌랴. 아파트 숲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언제 저 초록빛 풋풋한 들판을 제대로 느껴봤을까.
그래도 '생명의 땅'에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감자밭에 이르자마자 저마다 호미 하나씩 받아쥐고 신나게 흙을 긁어낸다. 이내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진다. "엄마, 감자가 너무 예뻐요."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먹을 만큼만 캐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은 귓등으로 들었나. 나눠 준 비료포대들이 꽉 찬다. '그래, 이 감자는 마트에서 사 먹는 감자와 차원이 다르지. 내 손으로 캤잖아? 얼마나 맛있을까?'
마을 산책길은 정겹기만 하다. 힘센 장사가 반나절만에 논 50개의 일을 뚝딱 해치웠다는 '쉰배미', 그 모습을 동네 부자가 배 아파하며 앉아서 바라보았다는 '같잔말랭이'. 전설이 서려 있는 약수터, 골짜기가 떠나갈 듯 메아리치는 황소 울음소리..... 김성용(40·대구 북구 구암동) 씨는 선생님답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고 박정희(33·대구 수성구 상동) 씨는 꼼꼼히 받아적는다.
오후 6시도 안됐는데 모두들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고작 1시간밖에 안걸었는데? 언덕 너머 마을의 된장찌개 냄새가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 한 그릇씩 뚝딱 비운 뒤에는 새끼꼬는 시간. 어설픈 실력 탓일까. 애써 꼰 새끼줄이 줄넘기 몇 번에 그냥 끊어진다. 보다못한 마을 어르신들이 손수 나선다. 어린아이 팔뚝보다 더 굵은 새끼줄이 배배 꼬인다. 내일 줄다리기때는 안 끊어져야할텐데.....
그런데 이건 뭐지?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빗방울이 떨어진다. 체험단의 얼굴에도 시커먼 먹장구름이 드리운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내성천 '불치기'는 물 건너 간다. 애써 만들어둔 횃불들이 처마 아래에서 소리없이 흐느낀다.
하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 아닌가. 농협 구미교육원 김민구(42) 교수의 '꼭지점댄스' 강습에 다시 웃음꽃이 피어난다. '몸치'라며 나서지않던 주용출(37·대구 수성구 만촌동)씨도, 수줍어하던 문영주(37·여·대구 수성구 지산동) 씨도 모두 '오! 필승, 코리아'다.
이튿날 아침.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환하게 웃고 있다. 전날 저녁 쏘가리·꺽지매운탕을 안주 삼아 밤 늦도록 정담을 나눈 체험단도 하나둘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맑게 갠 하늘만큼이나 표정들이 밝다.
이 곳에는 '용'이 참 많다. 마을 이름은 용궁(龍宮)면 회룡포(回龍浦), 용처럼 마을을 휘감고 도는 내성천 앞산은 비룡산(飛龍山·해발 240m). 또 장안사 아미타불여래좌상은 연화대 대신 두 마리 용 위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마을 어귀에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청룡 조각상이 지키고 서 있다.
꼬박 1시간이 걸려 오른 비룡산 전망대에서 깨끗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고 '뿅뿅다리'로 향한다. 숭숭 구멍이 뚫린 철판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걷는 재미도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난생 처음 보는 '고무 다라이 보트'를 타려고 물 속으로 첨벙.
"요즘은 보기도 드물어졌지만 우리 어렸을 적엔 요 놈 타고 강 건너 학교에 다녔어." 꼬마친구들과 헤어지기 아쉬운 듯 이승헌(50) 마을 이장과 이문길(63) 녹색체험마을 총무는 "다음에 꼭 '불치기'하러 다시 오라"며 꼭 쥔 손을 놓지못한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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