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새내기 단체장 구보 씨에게

늦었지만 축하합니다. 아직도 천하를 얻은 듯한 기분이겠지요. 자다가 생각해도 꿈인가 싶을 겁니다. 우리도 귀하에게 그런 관운이 따를 줄 예전에 미처 몰랐으니까요. 그러니 온갖 의욕에 넘쳐 취임 날짜를 손꼽는다는 소식은 이해할 만합니다. 이제 귀하는 거기 있고 또 사람이 몰릴 터니 이렇게나마 몇 마디 보탤까 합니다.

세종 얘기부터 꺼내겠습니다. 갑작스레 세자 책봉 두 달 만에 왕위에 오른 세종은 장차 나라를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릴 것인가 하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해서 제왕학 코스인 경연에 나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당대의 석학 변계량이 나섰습니다. "그 길은 사람을 잘 알고 잘 쓰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하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총민한 세종은 따랐습니다. 마침내는 "정치하는 요체는 인재를 얻는 것"이라는 통치관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탁월한 용인술은 재위 32년을 찬란하게 꽃피웠습니다. 오늘날 세종의 리더십이 각광받는 이유입니다.

제40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도 용인의 달인입니다. 할리우드 2류 배우 출신인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연임 때나 대통령을 두 번 지내는 동안 항상 전문성과 경력 위주로 사람을 썼습니다. 반면 그 앞의 카터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 캠프 출신인 이른바 조지아 사단을 이끌고 백악관에 들어갔지요. 레이건은 능력주의였고, 카터는 연고주의였습니다. 그 결과 레이건은 미국인이 추앙하는 대통령으로, 카터는 실패한 인물로 남았습니다. 리더십 연구에서 흔히 인용하는 사례입니다.

한 지방을 맡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역시 사람을 잘 쓴 곳은 융성하고 그 반대는 허물어지고 맙니다. 별 자원이 없는 우리 같은 지방 여건에서는 더더욱 인재가 전부입니다. 인재가 최대 자원이고, 인재 개발이 곧 지역 개발입니다. 세계화 지방화의 살벌한 각축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인 것입니다. 그 길을 걸은 선각자가 전남 장성군 김흥식 군수입니다.

그는 인구 5만이 살 길을 사람에서 찾았습니다. '세상은 사람이 바꾸고 사람은 교육이 바꾼다'는 모토로 장성아카데미라는 걸 열었습니다. 매주 다녀간 전국의 저명 강사가 500명에 이르고 연 24만 명이 경청했습니다. 공무원 전원을 유럽에 연수 보내고 농민과 택시기사까지 해외 견학을 시켰습니다. 직원 인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능력 위주로 사기를 높여 놓았고요. 그 성과는 기적 같습니다. 가구당 농업소득이 두 배로 뛰고, 이 작은 고을에서 무려 231개 기업이 돌아가고 있다니까요. 각종 수상 기록이 168차례라고 하네요.

세 번 연임을 하고 물러나는, 올해 70의 김 군수를 역할 모델로 삼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골라 써야 할까요. 귀하가 잣대입니다. 당신보다 나은 사람을 발탁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제일 형편없는 리더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부리면서 흡족해하는 족속입니다. 그런 리더의 주변에는 아부와 눈치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그 자리를 동네 골목대장 수준으로 만들려면 만만한 사람들로 채우십시오. 선출직 단체장이 실패하는 지름길은 자기가 가장 잘난 줄 아는, 대책 없는 우월감의 함정에 빠지는 겁니다. 선거가 무슨 국가고시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디서나 자신보다 유능한 인재를 반기는 리더가 돋보이게 마련입니다. 또 성공하고요.

그 다음 모리(謀利)와 기회주의가 몸에 밴 인물은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자나깨나 자리를 이용해 먹을 궁리밖에 하지 않습니다. 꼼수로 누리는 기득권이 깨질세라 끼리끼리 필사적이고요. 그런 무리를 분별하지 못하거나 모른 체하면 한통속으로 몰립니다. 몇몇에 놀아나는 허수아비 소리를 듣기 십상이지요. 그런 부류는 얼마든지 솎아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까요. 공자는 "현군의 첫 번째 조건은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 경계할 일은 청탁과 친소에 이끌린 인사입니다. 그럴듯한 구실을 갖다 붙여도 그런 인사는 권위를 잃습니다. 다수가 쑥덕거립니다. 어느 조직이고 내부 민심이 가장 무서운 법입니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인사가 직원의 공감을 사야 합니다. 김흥식 군수가 받든 인사 원칙입니다. 모쪼록 귀하가 성공하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김성규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