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거리응원, 그 힘의 비밀은?

지난 2002년 한 ·일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기적'을 이뤄냈다. 세계 4강에 오른 것이다. 꼭 4년이 흐른 6월. 대한민국 대표팀은 또 다른 '드라마'를 시작했다. 아프리카 강호 토고 대표팀을 꺾고 내친 김에 프랑스마저 뛰어넘겠다는 각오.

태극 전사의 실력이 남다른 성적을 낳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거리 응원'이 이같은 성적을 뒷받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만 명 넘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붉은 색 옷과 태극기로 무장한 채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친 정열이 오늘의 '태극전사'를 만들었다는 것.

급기야 학계와 언론계, 외신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독특한 거리응원 문화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이어지기도 했다. 학술논문의 주제로 삼아도 무리가 없다는 설명. 한국인의 혼을 실은 응원의 함성이 경기에 폭발적인 힘을 실어 줬다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응원'. 그 '마력(魔力)'을 들여다봤다.

◆운동장에서의 효과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는 응원의 함성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한 기분입니다."

백종철(38) 영진전문대 여자축구부 감독은 자신의 프로구단 선수시절을 회상하며 응원의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경기중 응원의 함성을 들으면 이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 자신의 기량 이상을 해 낼수 있습니다." 백 감독은 펠레, 마라도나가 그라운드에 뛰는 것보다 관중석 응원단이 훨씬 더 나은 성적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프로축구 대구 FC의 한 선수는 "홈경기와 원정경기의 승패는 응원 차이에서 오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며 "특히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응원을 들으면 경기의 집중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수 있다." 며 구체적인 응원의 효과를 설명했다.

대구 FC 팀 매니저인 주찬용(29) 씨는 "선수들 대다수가 부정적인 응원 소리에 기량이 떨어지고 위축되는 것이 사실" 이라며 "특히 스트레스에 민감하거나 경기 경험이 없는 선수일수록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중들이 승리를 낳는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응원효과는 '관중효과'라는 단어로 압축 표현된다. 관중효과란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이 관중을 '평가단'으로 인식, 관중의 기대심리에 부응하기 위해 실수를 줄이고 평소의 기량 이상을 해내는 것을 말하는 것.

자연히 관중수가 많을수록, 응원 함성이 높을수록 선수의 기량은 진작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경북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김진구 (44 ·스포츠 심리학 전공) 교수는 관중효과를 배로 높이기 위해서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첫째로 '위협적이고 저돌적인 관중'을 들었다. 상대선수들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응원은 전운이 감도는 응원이라며 남미와 유럽의 압축적이고 강도 높은 응원전략을 예로 들었다.

두 번째 요소는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응원 도구 사용'이라 했다. 북을 치고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는 것은 잠재의식 속에 숨은 공격성을 일깨워 선수들이 기존 기량 이상을 해낼수 있다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 정서가 하나 되는 통일된 응원'은 3번째 요소. 통일된 응원만이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정서에까지 영향을 끼쳐 상호 작용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응원을 할 경우 응원효과는 급감할 수 있다는 것. '온리 유(Only You)'를 외치는 붉은악마의 응원은 이러한 3박자를 두루 갖췄다고 김 교수는 풀이했다.

◆붉은악마도 이를 노렸나?

2002년 한·일 월드컵 전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월드컵 응원은 '붉은악마' 조직결성 이후 조직화·다양화됐다. 손뼉치기와 파도타기 일색이던 응원은 '오 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 'Gowest' 등의 다양한 응원구호와, '카드섹션''태극기 물결'등 다채로운 응원 방법으로 진화했다.

특히 올해는 2002년에 주를 이뤘던 응원가와 응원구호가 바뀌어 역동성과 단결성이 더욱 강조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현재 거리응원에는 'Reds go together' '승리를 위하여' 'Red devils' 등의 응원가가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또 꼭지점 댄스와 123응원, 12골 등의 응원구호도 시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구 붉은악마의 현장팀장인 최현기(24·학생) 씨는 " 현재 이뤄지고 있는 대부분의 응원구호와 응원가는 선수들의 사기진작과 응원의 결집력을 돋보이는데 주안점을 둬 만들어졌다." 며 "응원가인 '승리를 위하여'의 허밍부분은 상대선수의 기를 죽이는 효과가 탁월하다." 고 설명했다.

거리응원을 주도하는 치어리더들의 춤사위 역시 응원 효과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코리아 이벤트사에서 6년 째 치어리더로 활동중인 신보미(23) 씨는 "월드컵 거리응원은 수많은 관중들의 참여를 유도,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액션'이라 불리는 큰 동작과 몸짓에 안무의 주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같은 소속사의 응원팀장인 강창주(31) 씨는 "태극기를 크게 휘두르거나 굵은 목소리로 응원을 하는 것 역시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데 유리하다." 며 과학적인 분석 아래 응원전략이 짜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