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살에 원서를 줄줄 읽는 어린이', '외국인과 의사소통 하는 5세 어린이', '아이들 위해 나 하나쯤 희생해서', '조기 유학 붐 타고 기러기 아빠 양산'….
신문에 이런 헤드라인이 등장하기 몇 년 전에 우리는 똑같은 지면에서 다음과 같은 표제들을 자주 접해왔다. '조기 유학 성공 사례-어릴 적 한국 떠난 영재, 국내 굴지의 회사 CEO로 돌아오다', '국제적인 최고의 연주자 뒤엔 피땀 어린 부모의 이민 생활'…. 후자의 제목들은 전자의 현상들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영어를 어린 시기에 배우면 빛나는 미래가 보증된다는 대명제 하에 인천 공항은 방학마다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한편에선 이제 막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아이들을 코쟁이가 있는 원어민 영어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조기 영어 교육'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최근 10년 새에 일어난 일이다. 그 시발점은 교육부가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시작한다고 공표한 시점인 1995년이다. 이제 겨우 10년이 되어가는 마당인데 그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르고, 영·유아까지 대상으로 하는 영어 사교육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또래의 아이들을 가진 학부모는 당연히 아이의 장래와 교육의 목적, 그리고 현실이라는 세 축 사이에서 갈등을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조기 영어 교육은 득만큼의 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지적·언어적·정서적 발달 여건과 같은 내적 요인이나 교사, 학습 여건, 사회적 상황 등 학습 외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남이 하니까 불안해서 동참하는 식은 경계해야 한다.
언어 습득의 최적기에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충분한 조건을 제공하는 일은 잠재력의 조기 발견이자, 미래의 어장에서 풍부한 자원을 낚게 하는 도구이다. 그러나 일찍 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고려해야 할 사항을 살펴보자.
첫째, 조기 영어 학습은 교육기관에 일임했을 때와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빈번하게 언어 자극을 줄 때를 비교하면, 그 효과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부모의 실천의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학원에서 받은 학습이 확장될 수 있도록 아이를 살피고, 비슷한 언어 환경을 가정에서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이 영어라는 이질적인 실체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좋은 교사를 만나는 일이다. 원어민이든 비원어민이든 아이의 발달 단계와 아이들이 불안하지 않은 환경에서 엄마와 같은 푸근함을 느끼며 공부할 수 있는 교사를 찾아야 한다.
셋째, 아이의 특성 요인이다.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보이는 경우에만(아니면 흥미가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영어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내향적인지 혹은 외향적인지에 따라 학습 방법이 달라지고 소리와 문자, 이야기, 놀이 가운데 어느 쪽에 민감한지를 살펴 적절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아이가 부모의 희망대로 자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시기에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해 객관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일이다. 아이에게 영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면 앞서 열거한 여러 요인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확보해야 한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경제적·시간적 손실도 문제지만 건강하게 자라야 할 아이를 오히려 그르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 윤(한국외대 영어교육과 교수)
※ 이 글은 한국영어교육연구회와 대구작가콜로퀴엄이 진행 중인 월요 시민 영어 강좌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특강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대구 교보문고 10층 강당에서 열립니다. 다음 주(26일)에는 최인철 경북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재미있는 콩글리쉬 클리닉'을 주제로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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