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독일에서는 월드컵 예선전이 한창이다. 우리의 눈은 온통 독일에 가 있다. 참가국들은 가슴졸이며 그곳으로부터의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극동 아시아 사람들은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6월 10일 뮌헨에서 시작된 경기는 7월 10일 베를린에서 끝난다. 우리는 지금 베를린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결승까지 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베를린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베를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이맘때쯤 베를린에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그때를 생각하며 우리의 월드컵 참가를 자랑스러워했다. 그곳 큰 길가에는 월드컵 홍보관이 세워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이어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을 찾았다. 거대한 회색구조물이 압도했다. 매표소 부근 큰 광장에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70년 전의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1936년 8월 1일 제 11회 올림픽이 이곳에서 열렸다. 지금도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 내각이 진행해 '나치 올림픽'이라고 부른다. 역설적으로 올림픽 중의 올림픽, 역대 최고의 올림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자리에는 나치 깃발과 히틀러가 있었다. 독일의 나라 자랑에 참가 52개국 4천893명 선수들은 경악했다. 철모와 군화는 경기장 내외 분위기를 위압했다.
이 올림픽에서 일본은 승전보를 올린 것이다. 일본은 금메달 6개를 땄는데 그중 하나가 손기정의 것으로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였다.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때라 '손기떼이'라는 이름에 일장기를 달고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8월9일 손기정은 베를린 스타디움 마라톤 게이트에 1등으로 들어와 테이프를 끊었다. 오후 5시 29분(한국시간 10일 오전 1시 29분)이었다.
당시 독일 장내 아나운서는 "11만 관중들이 어두운 입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손(孫)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한국인 학생입니다. 아시아의 능력과 에너지로 이 한국인은 마라톤 경주를 해냈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드디어 손이 결승선을 지났습니다."
남승룡도 3등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영광스럽게도 금·동메달을 동시에 따낸 것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소설가 심훈은 손기정의 금메달 소식을 듣고 그 감격을 적었다.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 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 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밤 그대들은 꿈 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精靈)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심훈
이 글은 지금 대전 현충원에 있는 손기정의 묘비명에 새겨져 있다.
내가 이 올림픽 스타디움을 찾아갔을 때는 한창 보수공사 중이었다. 원형을 그대로 둔체 수용인원을 늘리는 작업과 현대화 작업을 함께 한 것이다. 그들은 새 스타디움을 세울 수도 있으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과거의 경기장을 그대로 쓰기로 한 것이다.
이 스타디움이 이번 월드컵을 맞아 보수공사를 마치고 월드컵 결전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브라질과 크로아티아, 스웨덴과 파라과이, 에콰도르와 독일이 각각 이곳에서 예선전을 벌였다. 안방에서 TV로 보는 스타디움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중계하는 아나운서는 이 역사를 말하지 않고 있다.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손기정 선수가 결승라인으로 들어오던 현장은 그대로 있다.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듯하다. 대~한 민국!
김정동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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