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문을 찾아서] '헐려짓는 광화문(光化門)'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청사(廳舍) 까닭으로 헐리고, '총독부'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지어지리라 한다.

원래 광화문은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의식 없는 물건이요, 말 없는 건물이라,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회피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 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 할 뿐이다. 오랫동안 풍우(風雨)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석공(石工)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앎이 없으리라마는, 뚝닥닥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 아파하며, 역군(役軍)의 연장이 네 허리를 들출 때에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 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를 저려할 것을 네가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팔도강산의 석재(石材)와 목재(木材)·인재(人材)의 정수(精粹)를 뽑아 지은 광화문아! 돌덩이 한 개 옮기기에 억만 방울의 피가 흐르고, 기왓장 한 개 덮기에 억만 줄기의 눈물이 흘렀던 우리의 광화문아! 청태(靑苔) 끼인 돌 틈에 이 흔적이 남아 있고, 풍우 맞은 기둥에 그 자취가 어렸다 하면, 너는 옛 모양 그대로 있어야 네 생명이 있으며, 너는 그 신세 그대로 무너져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풍우 오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며, 수구당(守舊黨)도 드나들고, 개화당(開化黨)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殺伐)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日露)의 사절(使節)도 지나고, 원청(元淸)의 국빈(國賓)도 지나던 광화문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천직(天職)이며, 그 길을 인도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천명(天命)이라 하면, 너는 그 자리 그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친 것이다.

너의 천명과 너의 천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이었거니와, 너의 생명과 너의 일생은 헐리는 그 순간에, 옮기는 그 찰나에 마지막으로 없어지려고 하는구나. 오오, 가엾어라! 너의 마지막 운명을 우리는 알되 너는 모르니, 모르는 너는 모르고 지내려니와 아는 우리는 어떻게 지내라느냐?

'총독부'에서 헐기는 헐되, '총독부'에서 다시 지어놓는다 한다. 그러나 다시 짓는 그 사람은 상투 짠 옛날 그 사람이 아니며, 다시 짓는 그 솜씨는 웅건(雄建)한 옛날의 그 솜씨가 아니다. 하물며, 이시이인(伊時伊人)의 감정과 기분과 이상(理想)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다시 옮기는 그곳은 북악을 등진 옛날의 그곳이 아니며, 다시 옮기는 그 방향은 구궁(九宮)을 정면으로 한 옛날의 그 방향이 아니다.

서로 보지도 못한 지가 벌써 수년이나 된 경복궁 옛 대궐에는 장림(長霖)에 남은 궂은비가 오락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 하는 망치 소리는 장안(長安)을 거쳐 북악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닯아 하는 백의인(白衣人)의 가슴에도 부딪친다. -1926년 8월11일자 동아일보 사설

풍우(風雨) : 바람과 비, 비바람.

역군(役軍) : 공사장에서 삯일을 하는 사람, 일꾼.

청태(靑苔) : 푸른 이끼.

일로(日露) : 일본과 러시아.

원청(元淸) : 원나라와 청나라.

국빈(國賓) : 나라의 귀한 손님으로 우대를 받는 외국 사람.

이시이인(伊時伊人) : 그 때 그 사람.

구궁(九宮) : 구중궁궐의 준말. 대문이 겹겹이 달린 깊은 궁궐.

장림(長霖) : 긴 장마.

설의식(薛義植)

1900~1954. 언론인. 함경남도 서천 출생. 일본대학 사학과 졸업. 동아일보 주일 특파원·편집국장 역임. 1936년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사퇴. 해방과 함께 복귀해 주필·부사장 역임.

광화문은 서울의 궁궐 문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구조가 웅대하면서도 수법이 섬세하며,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외관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이런 민족의 얼굴 같은 광화문을 침략자들이 제멋대로 옮기는 꼴을 견디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노할 줄도 모르는 말없는 건물'에 보내지는 필자의 절절한 애정은 실상 '애닯아 하는 백의인의 가슴'을 향해 있다.

역사를 보면 광화문만큼 곡절이 많은 궐문도 없다. 조선 태조가 개국 3년만인 1395년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돼 270년이나 역사에서 사라졌다. 1864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옛 모습을 찾았지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버렸다. 6.25 전쟁 때 다시 소실됐다가 1969년 복원되는 등 부서지고 다시 짓고 옮기기만 여러 번이다. 민족과 흥망성쇠를 같이 해온 셈이다. 촛불집회의 열기와 붉은악마의 함성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요즘, 광화문은 또 제 몸의 어디쯤에 역사의 순간들을 담고 있을지 보고 싶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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