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700㎞ 가량 떨어져 있는 혼슈 최북단의 아오모리현에서 다시 버스로 2시간 가량을 더 가면 세계 최대의 원자력단지가 있는 로카쇼무라(六ケ所村)가 나온다. 로카쇼무라에는 지난 1992년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우라늄 농축시설이 가동된 데 이어 현재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내년 가동을 목표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시설이 한창 건설중이다. 또한 이곳에는 재생 핵연료인 이른바 '혼합핵연료' 가공시설이 2012년 들어설 예정이다.
로카쇼무라는 경제대국 일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빈촌 중의 빈촌이었다. 1년 중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냉해 때문에 농사도 마땅치 않은데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생계를 위해 대도시로 떠나야만 했다.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1인당 주민소득은 일본 전역에서 거의 꼴찌를 맴돌았다.
이런 로카쇼무라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말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비롯한 원자력시설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원자력 시설 건설이 시작되면서 관련 기업들이 속속 로카쇼무라에 입주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소득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시설유치로 인한 많은 지원금과 기업들의 세금납부로 지역재정이 좋아지면서 경기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로카쇼무라의 지역경제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1인당 주민소득이 일본 전국 10위권 내로 올라섰고, 산업구조도 1차 산업 중심에서 2차 및 3차 산업 중심으로 바뀌었다. 지원된 각종 교부금으로 도로 등 사회간접시설이 확충되고, 지역 도서관을 비롯해 노인복지센터, 첨단 콘서트홀 등 각종 문화시설들이 들어섰다. 원자력시설을 홍보하기 위한 PR센터에는 매년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찾아 지역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관광수입도 지역경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원자력시설 유치 운동이 벌어질 당시 원자력시설이 건설되면 로카쇼무라에서 나오는 농산물에 대해 전국적인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하던 일본의 반핵단체의 위협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유와 사과, 마늘과 참마는 일본 전체 공급량의 40% 이상을 공급할 정도로 오히려 판매가 늘어나는 등 지역 농산물의 브랜드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핵융합연구소 유치에 성공해 국제 과학기술도시로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반핵단체와 일부 지역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원자력시설 유치를 관철시킨 쓰시다 히로세 로카쇼무라 전 촌장은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한 초청강연회에 참석, "원자력시설을 유치한 것은 지역과 국가의 공존 발전, 그리고 미래의 후손을 위한 선택이었으며, 그 선택은 결국 옳았음이 입증됐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면서도 재정자립도가 고작 35%에 불과한 경주가 지난해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89.9%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19년을 표류해 온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하면서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경주는 입지, 교통, 교육, 기반시설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의 로카쇼무라를 능가하는 여건과 기반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다 특별지원금 3천억 원과 1천200개 이상의 협력업체를 거느린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1조5천억 원 가량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양성자가속기 건설 등 방폐장 유치에 따른 각종 혜택도 로카쇼무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지역발전을 위한 출발점을 놓고 볼 때 모든 면에서 로카쇼무라에 비해 훨씬 유리한 상황인 것이다.
많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방폐장 유치를 성공시킨 백상승 경주시장의 포부처럼 경주가 방폐장 유치를 계기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세계가 놀랄만한 첨단과학 도시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인지는 이제 경주시민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세계의 원자력발전국가들이 경주를 지역과 국가의 공동번영을 위한 좋은 모델로 벤치마킹하고 있듯이 앞으로 경주가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드높일 수 있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
김형준 한국수력원자력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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