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식아동 도시락 만드는 범물사회복지관

"사랑의 도시락, 식중독 낄 틈이 없죠"

"우리 가족에게 먹인다고 생각하고 만들어요."

닭고기, 부추, 배추 등을 가득 넣은 닭개장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커다란 두 솥에서 펄펄 끓는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이 입 안의 군침을 절로 돌게 한다.

3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물사회복지관 급식조리실 풍경이다. 3평 남짓한 좁은 공간, 음식을 익히느라 불을 이용하는 탓에 조리실 안은 한증막이었다. 그 안에선 중년 아주머니 10여 명이 더위와 싸우며 도시락 80인 분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대한적십자사 대구 수성구지구협의회 소속 봉사원. 지난 2000년 이 복지관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저녁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업을 시작한 뒤부터 줄곧 함께 해온 사람들. 음식을 만드는 날렵한 손놀림이 베테랑 주부들임을 보여준다.

토·일요일에는 쌀과 간단한 반찬을 나눠주지만 평일에는 매일 적십자 봉사원들이 복지관을 찾아 3시간에 걸쳐 도시락에 들어갈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는다. 이날 오후 5시 무렵 복지관 인근 결식아동 38명과 홀몸노인 등은 쥐포조림, 계란찜, 깍두기, 닭개장이 담긴 따뜻한 도시락 가방을 받아들었다.

문영란(57·여·수성구 만촌동) 씨는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어 몸이 아픈 날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단다.

"사 먹는 음식은 금방 질리기 마련이죠. 깨끗한 음식인지도 문제가 되고요. 도시락을 들고 가면서'고생이 많다', '고맙다'는 인사에 피곤함이 싹 가십니다."

불량 학교급식으로 인한 식중독 사고가 연일 터지는 요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지만 6년째 아무런 탈이 없었다.

봉사원 정정식(58·여·수성구 범어동) 씨가 밝힌 비결. 원칙에 충실하고 정성껏 만들면 된다는 것.

"오늘 만들 음식재료는 무조건 오늘 산 걸 쓰죠. 막상 사온 재료가 신선하지 않다 싶으면 모두 반납하고요. 음식을 만들기 전 손도 철저히 씻고, 조리기구도 항상 소독해서 씁니다."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맛도 없을뿐더러 쉬 상하는 등 위생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황광자(64·여·남구 봉덕동) 씨의 얘기다.

"복지관에서 신경 써서 짠 식단에 따라 밥솥 운전 경력만 30년이 넘은 사람들이 음식을 만드니 그 맛은 최고라고 자부해요. 게다가 내 가족, 내 아이가 먹는다고 생각하고 만드는데 식중독이 끼어들 여지가 있겠습니까."

복지관 급식담당 김지혜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 되도록 국산 음식재료를 구입하고 음식이 남아도 이튿날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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