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8시쯤 북구 산격동의 '대구 우편집중국'.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한 주차장에서는 이날 밤 동안 떠나야 할 산더미 같은 우편물들이 배달 트럭에 차례차례 실리고 있었다. 안내 직원을 따라 미로 같은 복도를 걸어서 5층 '소형 통상계'로 향했다. 소형 우편물을 주소지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대구와 경북 중·남부 지역의 우편물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가 목적지를 찾아간다.
작업장으로 들어서자 기계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후끈거렸다. 소음과 먼지도 만만찮았다. 1일 3교대로 직원들이 일하는 이 작업장은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했다. 대형 우편물 분류기계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김혜승(운암고 1년·16) 양과 김유리(구암고 1년·16) 양을 만날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쌓인 우편물들을 차곡차곡 간추리는 작업 중이었다.
"우편물들을 주소가 적힌 부분이 앞으로 오게 차례대로 정리하는 일이예요. 그래야 '오비스'(우편번호 자동 인식기)가 행선지에 따라 우편물을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대요."
혜승 양은 콧 등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장갑 낀 손으로 쓰윽 닦으며 또박또박 설명했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짜리 자원봉사를 나왔다는데, 벌써 일이 손에 익은 눈치다. 유리 양은 "이곳에서 하루 동안 처리되는 소형 우편물이 220만 통이라고 하니 정말 놀랍다."고 했다. 친구 사이인 둘은 '대구청소년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이 곳을 알게 됐다고 했다. 다른 평범한 기관도 많은데 상대적으로 힘든 이 곳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것도 야간 시간이 아닌가.
"파출소나 도서관도 있지만 여기서는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기왕 1년에 20시간 채우는데 보람있는 일이면 더 좋잖아요."
둘은 이날 낮에도 자원봉사를 하고 왔다고 했다. 동산병원에서 환자들을 안내해주고 직원들의 서류 정리를 돕는 일이었다. 지난주에는 어린이 회관에서 회전 열차를 타는 아이들 줄 세우는 일을 도왔다고 했다. 편하고 일감이 적은 곳만 찾는 아이들에 비해 대견하다며 옆에 있던 직원도 말을 보탰다.
분류대를 거친 편지를 행선지별로 박스에 담는 일을 하던 신선호(성광중 2년·14) 군은 "요즘에는 휴대폰 고지서나 각종 기관의 통지서가 훨씬 많다는 말을 듣고 편지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통의 우편물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 배달된다는 사실을 안 것만 해도 보람있다."고 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29일 오전 중구 대봉동의 '어르신 마을' 을 찾았다. 치매 노인 등을 돌보는 유료 요양원인 이곳에서는 마침 10명 가량의 중·고교생들이 노인들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는 중이었다.
학생들은 처음이라 머쓱할 법도 한데 '곰 세마리', '개구리와 올챙이' 등의 동요를 율동과 함께 불러 보였다. 학생들은 대구청소년자원봉사센터 소속 '빛' 동아리 회원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지난 해까지 몇 년간 달서구의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정기적으로 봉사를 해 오다 이번 여름 처음으로 이 곳으로 왔다고 했다. 이 동아리는 1999년 청소년, 사회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래 노인 복지시설을 방문해 봉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쇼파에 몸을 기댄 할머니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손길이 제법 익숙했다. 한 할머니가 "꽃이 너무 고와서 뽑았더니 가시가 있더라."며 창가(昌歌) 풍의 노래를 부르자 한 여학생은 그 설명에 찬찬히 귀를 기울였다. 연신 같은 노래를 반복해 부르던 할머니는 더 신이 나서 목청을 돋궜다. 안내 직원은 "노래를 따라 박수를 치거나 율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매 노인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된다."고 귀띔했다. 노인들은 손자 손녀뻘 되는 학생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생기를 되찾는 듯 했다.
박소영(상서여정보고 2년·17) 양은 "지난 3월에 처음으로 자원봉사 모임에 들기 전까지는 혼자 자원봉사할 곳을 알아봐야 했다."며 "여럿이 모이니까 봉사도 자주 올 수 있고 더 즐겁다."고 했다. 전성현(침산중 2년·14) 군도 "치매 노인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얘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노인들의 식사 수발을 돕느라 당초 예정했던 낮 12시를 훌쩍 넘겼지만 지루해 하거나 힘든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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