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 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망의 城(성)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시인 韓龍雲(한용운)은 '여름밤이 길어요'라는 시에서 이같이 읊었다. '당신'이 가신 뒤의 길어진 여름밤을 노래한 셈이다. 하지만 요즘 긴 한여름 밤은 지구촌이 겪고 있듯이 '살인더위' 때문에 가혹하다.
○…엄청난 災殃(재앙)을 몰고 왔던 장마가 언제 끝나나 가슴 졸이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인데 '차라리 장마가 낫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찜통더위'에 야단들이다. 한밤의 최저기온이 25℃를 넘는 熱帶夜(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생활 리듬이 깨지고 무기력증에 빠지는 사람도 적잖다. 영국에선 한여름을 '개의 계절'이라 부른다지만, 평상심마저 앗아가는 무더위에 '잠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낮에는 불볕, 밤엔 열대야가 이어지는 三伏(삼복) 더위다. 기상청은 장마 뒤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열대야가 내달 초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어제 의성은 낮 최고기온 37.0℃로 올 최고를 기록했다. 대구는 36.7℃, 영천'합천'전주 36.4℃, 진주 35.8℃, 서울도 34.7℃나 됐다. 폭염 탈출 행렬이 오늘 절정을 이룰 전망인 가운데 남부 지방은 물론 전국이 찜통이다.
○…우리나라 열대야는 1900년대 초반에 비해 근년 들어 크게 늘어났다. 1909년에서 1920년까지는 4일 정도였으나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12일로 3배나 많아졌다. 올해 暴炎(폭염) 때문에 승용차 안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생겼고, 전국에선 갖가지 사고와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다음주까지 전국 최저기온이 25℃ 안팎으로 예상되는 모양이다.
○…무더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건 지구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溫暖化(온난화)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놀라울 지경으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이 찜통더위에다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도 불쾌지수를 보태는 꼴이니 理性(이성)을 잃기 십상이다. 갖가지 묘책들이 동원되는 모습이나, 열대야와 한용운이 말한 '악마의 웃음'까지 슬기롭게 이겨내야겠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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