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몸매를 위한 다이어트 열풍과 예쁜 얼굴을 위한 성형 욕구의 범람을 보며 '미인과 바보는 형제간이다'라는 영국 속담을 생각해 본다. 미인에 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오늘날은 의류, 화장품을 포함한 외모 관련 업체들이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 하려고 작위적으로 무리한 기준을 만들어 유포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몇 해 동안 마른 몸매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 때문에 여성들의 옷이 점점 작은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올 봄부터 불기 시작한 44사이즈 돌풍은 이런 경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4사이즈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쇼핑몰이 성업 중이고, 심지어 유래가 없는 33사이즈라고 표시된 옷이 판매되기도 한다. 날씬하게 보이고 싶은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가볍게 보아 넘기기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44, 55와 같은 여성복 사이즈 체계는 80년대에 사용된 것으로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여성복 치수체계가 바뀌면서 사라진 표기법이다. 키 150cm, 가슴둘레 82cm의 작고 아담한 체격에 맞았던 44사이즈가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가장 작은 사이즈라는 이유만으로 엉뚱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요즈음 젊은 여성들의 평균 신장은 160cm대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80년대의 44사이즈 옷에 적합한 여성들은 많지 않다. 더구나 현재 44사이즈로 판매되는 대부분 옷들은 조금 작은 사이즈의 옷이지 과거의 44사이즈 그대로가 아니다.
44사이즈 열풍이 불면서 매장에 따라서는 큰 사이즈의 옷은 아예 판매조차 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이즈가 큰 여성들은 자신의 체형에 점점 더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20대 여성들조차 자신의 신체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스키니진(skinny jean)과 같은 밀착되는 옷들이 유행하면서 가슴둘레를 제외한 다른 둘레항목에 매우 불만족스러워 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강과 날씬한 몸매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불순한 저의에 의해 부추겨지는 44사이즈 마케팅 전략 때문에 주눅이 드는 것은 어리석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상을 갈망하면서도 날씬한 체형이란 굴레를 스스로에게 씌우는 것 또한 바보짓이다.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절식, 혹독한 운동과 같은 고행을 통해 실체가 모호한 44사이즈로 가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사람 나고 옷 났지, 옷 나고 사람 났나요?'라며 44사이즈에 반기를 든 어느 19세 소녀의 당당함에 박수를 보낸다. '건강미와 지성미를 앞지를 수 있는 아름다움은 없다'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추태귀 상주대 의상디자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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