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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칼럼] 낮술에 취해도 갈 길은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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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朝(왕조) 시절 임금의 실정이나 잘못된 人事(인사) 등을 비판해야 하는 言官(언관)의 직책은 고달픈 직책이었다.

따라서 대궐 안에서도 언관은 업무시간 중 임금 앞에서 낮술에 취해 있어도 허용이 됐고 당나라의 경우 百官(백관)들이 길을 비켜 줄 정도로 특별히 우대를 했다.

잘나서가 아니라 왕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 보면 언제 옥에 갇히거나 귀양을 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직책인 만큼 일종의 직무 스트레스를 푸는 특혜를 준 셈이다.

실제 듣기 싫은 바른 소리만 해 대느라 걸핏하면 잡혀 가는 언관들의 獄門(옥문) 출입이 잦은 바람에 의금부 옥졸들조차 '나으리가 오늘은 비록 높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다음날엔 반드시 옥에 들어와 나의 통제를 받을 것이다'고 이죽거릴 정도였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 언론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직접 권력 쪽으로부터 소송 등으로 반격을 받는 경우도 그렇지만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댓글이란 무기를 통해 공격해 오는 반대세력의 거친 입에 당하는 수난은 왕조 때는 없던 신종 스트레스다.

조금만 비판 수위를 높여 사설을 쓰거나 기사가 나가면 어김없이 거친 댓글꾼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온다.

어디서 훈련을 받았는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조직적이고 기동성이 있으며 짜여진 공격이란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당연히 비판에 대한 또 다른 반대의 비판은 얼굴 없는 댓글이라도 존중해야 한다.

댓글로 날아오는 공격 속에도 귀담아들을 반론과 충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댓글의 논리가 더 설득력 있고 사리에 맞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법원과 경찰이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옮기거나 악성 댓글을 올린 포털 업체와 네티즌에게 배상 책임과 사이버 범죄 사범으로 입건했듯이 건설적 비판이 아닌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바른 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언관을 투옥시키고 귀양 보내 言路(언로)를 위축시키고 막은 왕권의 폭력처럼 공격조들의 악성 댓글은 公論(공론)이 아닌 폭력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때는 물론 민주화된 문민 대통령 시절에도 언론의 정치성 보도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한 적이 잦았다.

YS 시절 이런 풍자를 썼던 기억이 난다.

YS가 신문사 사회부장들을 초청해 식사 대접을 하면서 '오보나 과장 보도를 내고도 정정 없이 그냥 지나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강한 언질을 주었다. 모 신문사 부장이 속으로 찔끔했다.

며칠 전 국회의원 땅 투기 관련 기사에서 '국회의원 절반은 도둑놈이다'는 기사를 냈다가 항의를 무시하고 지나친 게 기억나서였다.

식사를 하다 말고 밖에 나온 그 부장 본사에 조그만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어이 김 차장, 지난번 국회의원 절반이 도둑 놈이다고 했던 기사 말이야, 그거 내일 신문에 '절반은 도둑놈이 아니다'로 정정해서 다시 써!'

권력의 압력에는 보이지 않게 주눅이 들어 안 해도 될 정정을 하듯 과천부터 기는 식의 언론 속성을 빗댄 우스개다.

이제 언론과 정권, 네티즌 모두가 서로의 언로를 긍정적으로 열어 주고 건강한 비판을 상호 수용하는 변화된 마인드로 우리 사회를 맑고 넓은 곳으로 이끌어 가야 할 때다. 때로 비판이 치우칠 때가 있는 본란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쓰면 댓글 욕설에 시달리고 저렇게 쓰면 '청와대서 사과상자라도 내려왔나'고 가시 돋친 농담을 걸어 오는 처지니 수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낮술에 취하면서도 마이웨이, 언관의 길은 멈추지 않아야 함이 언론인 걸 어찌하겠는가.

때마침 댓글 등에 대한 판결이 나왔기에 독자분들께 편달을 부탁 삼아 드려 본 푸념이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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