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쥬르차니 페렌츠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국영 방송국을 점거, 약탈하는 폭력 소요사태로 비화됐다. 지난 17, 18일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앞에서 1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평화적으로 전개됐던 시위는 19일 새벽 일부 시위대가 인근 국영TV 방송국에 난입하면서 경찰과 충돌, 경찰관 100여 명을 포함해 150여 명이 부상하는 폭력사태로 발전했다. 헝가리에서 이 같은 폭력시위가 발생한 것은 지난 1989년 공산주의 붕괴 이후 처음이다.
MTI 통신은 쥬르차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자신들의 입장을 생방송으로 공표하기 위해 방송국에 들어가 3개 층을 점거, 컴퓨터 등 방송 시설을 부수고 일부는 기자재 등을 약탈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이날 오전 1시께부터 MTV 등 일부 채널의 방송이 중단됐으며, 3시께 진압 경찰 수천 명이 투입돼 방송국에서 시위대를 몰아낸 뒤에야 방송이 재개됐다. 방송국 진입 과정에서 수십 명의 시위대는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저지하는 경찰을 향해 병, 보도블록, 돌 등을 던지면서 투석전을 벌였으며, 방송국 앞 주차 차량이 불타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현지 언론들은 경찰이 전날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시위가 폭력사태로 발전할 것을 전혀 예상치 못해 극소수의 통제 병력만 투입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쥬르차니 총리는 18일 밤 사임할 뜻이 없다고 밝혔으며, 소요사태를 일으킨 일부 시위대를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쥬르차니 총리는 또 "거리로 나서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갈등과 위기만을 조장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시위는 최근 헝가리 사회당 연정의 지지도가 급락하는 가운데 쥬르차니 총리가 지난 5월 당내 회의에서 정부가 4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거짓말만 해왔다고 발언한 녹음 테이프가 17일 공개되면서 촉발됐다. 헝가리 국영 라디오 방송 인터넷판에 공개된 테이프에 따르면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 재집권에 성공한 쥬르차니 총리는 "정부가 4년 동안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우리는 지난 2년간 거짓말을 해왔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수년간 온 나라를 뒤덮었던 거짓말을 이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총선 승리를 위해 정부의 지표에 관해 "아침에도 거짓말했고, 밤에도 거짓말했다."는 토로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헝가리 대통령은 쥬르차니 총리가 "도덕적 위기"를 조장했다고 말했으며, 제1야당인 피데스(FIDESZ·청년민주연맹)는 쥬르차니의 퇴진 요구와 함께 항의표시로 19일 하루 의회 의사일정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오전 국가안보내각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19일 저녁(현지시간)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집결한 1만 5천 명의 시위대는 쥬르차니 총리의 퇴진과 정부의 개혁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자정이 넘도록 시위를 계속했다.
이들 중 수천 명은 광장을 빠져나가 여당인 사회당(MSZP) 당사 쪽으로 몰려갔으며, 당사 앞에서 최루가스를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에 돌과 폭죽 등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MTI 통신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 흩어진 군중이 오전 1시께 인근 로코치 거리에 재집결, 대로를 행진하며 상가 유리창을 부수고 지방선거 벽보를 찢는 등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가 또다시 과격 폭력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전날과 같은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수백 명의 병력을 시위 현장에 배치하고 폭력 행위자를 검거하고 있으나 시위대를 완전히 해산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총리 퇴진을 외치는 반정부 시위는 이날 미슈콜츠, 베케슈처버, 니레지하저, 줄러, 세게드, 에게르, 솜버트헤이 등 헝가리의 거의 모든 중소도시에서 수백 명 단위로 동시에 벌어지는 등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파문에 대한 헝가리의 여론은 양분된 것으로 조사됐다. 손더 입쇼쉬가 500명을 상대로 실사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3%는 쥬르차니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47%는 총리직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헝가리 사회당(MSZP) 연정은 총선 승리 이후 추진해온 세금 인상, 대학 수업료 도입, 의료 보조금 삭감 등 일련의 강도높은 개혁조치가 큰 반발을 불러오면서 내달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 지지도가 20%대로 추락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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