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백발은 면류관입니다

오늘은 어르신들이 대접 받는 '노인의 날'입니다. 이 좋은 날에 우울한 소식도 없지 않습니다. 정부가 노인 일자리 8만 개를 만들어 내겠다며 1천100억 원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반 년이 더 지나도 아직 '하는 일 없이 바깥에 나돌아 다니는 하버드 대학생'과 '동네 경로당에서 시간 때운다는 도쿄대생', '하루종일 와이프 옆에 붙어 지내는 하와이대생'들은 좀체 줄어들 낌새가 없습니다. 자조섞인 낡은 우스개가 여전히 우리 생활속에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르신 세대의 자살률도 이제는 중년층을 앞섰습니다. 61세 이상 자살은 하루 13명꼴입니다. 지난해 경우 중년층 자살률은 14.1%만 늘었지만 어르신 세대 자살은 102%나 늘었다고 합니다. 노인의 날인 오늘도 또 몇 분이나 스스로 세상을 뜨실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노인층 파산신청 건수도 지난해 2배나 늘었습니다. 복지 예산이 과거 못살던 시절보다 천문학적인 규모로 더 늘려지고 국민건강보험제도, 의료문화 인프라가 눈부실 만큼 나아졌음에도 왜 그런 비극은 거꾸로 더 늘어나는지. 오늘따라 그 의문과 해법을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신세대 자녀들도 어르신 세대가 과거에 배우고 지녔던 효(孝)나 경로(敬老)사상과는 조금씩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노후를 자녀에게만 기대기엔 세상의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 한국 부모들이 자녀들로부터 생활비 보조를 받는 비율은 약 56%라고 합니다. 좀 오래된 통계조사니까 지금쯤은 30~40%로 더 낮아졌을 겁니다. 같은 시기 일본의 부모들은 4%, 미국은 0%였습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4%나 0%시대로 갈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전통적 가족제도나 효 중심의 관습, 그리고 노후복지보장제도가 미국 같은 나라와는 격차가 크니까 급격히 0%로 곤두박질치지는 않겠지만 큰 흐름은 그쪽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이 빠를수록 효와 사랑이 살아있는'아름다운 노후'사회는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르신들이 아래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도록 희망과 용기와 자긍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구약성서에도 '백발은 빛나는 면류관(冕旒冠), 착하게 살아야 그것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는 말 역시 어르신들께서 노후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삶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통계에 허탈해하거나 자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수록 젊은 용기와 낭만을 너무 쉽게 버리지도 않으셔야 합니다.

미국 존슨 대통령의 부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첫눈을 맞으면서도 옛날 같은 감흥이 일지 않을 때 나는 늙어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말은 거꾸로 첫눈을 맞으며 늙은 아내의 손을 잡고 첫 데이트하던 오솔길이라도 걸어보는 감성(感性) 회복을 하시는 것이 아침부터 지하철 타고 문양역 종점을 오가는 것보다 훨씬 더 젊음을 멋있게 지키는 방법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끝자락인 말년은 군자(君子)가 마땅히 정신을 백 배 더 맑게 해야 할 때다고 했듯이 더욱 강한 도전정신과 용기, 존경받을 수 있는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노후의 긍지를 지키십시오.

'집안에 노인이 있다는 것은 좋은 간판이다.'는 히브리의 격언처럼 당신의 존재는 노인이란 이름만으로도 언제나 소중합니다. 어두운 통계에 움츠리지 마시고 존경받을 백발의 면류관을 쓰고 가슴을 펴십시오.

올 추석, 자식들 효도 용돈 액수부터 당당히 올리십시오. 아름다운 노후가 있는 사회는 나랏돈만 퍼붓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름다운 노후는 결국 어르신들 마음속 용기와 낭만에 있습니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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