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의로 주차선까지…" 주택가는 '주차 전쟁 중'

2일 오후 남구 대명4동 주택가. 남구지역에서도 유독 '주차 민원'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 최근 이 동네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구청에서 지정한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이 아닌데도 누군가 페인트로 주차선을 그어놓은 곳이 1, 2곳씩 생겨나고 있는 것. 주차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몇몇 주민들이 타이어나 드럼통, 페인트통 등 부피가 큰 물건으로도 모자라 직접 페인트로 주차선을 그린 뒤 '주차금지'라고 적어 깜쪽같이 속이고 있는 것.

밤마다 주차 전쟁을 벌인다는 주민 채모(40) 씨는 "구청에서 그어놓은 노면 표시인 줄만 알았다."며 "공공도로를 자기집 앞이라는 이유로 개인 주차장인냥 사용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참다못한 채 씨는 결국 지난 28일 불법으로 그려진 노면 표시를 지워줄 것을 구청에 정식으로 요구했다.

주차전쟁이 살갑던 이웃들을 헤집어 놓고 있다. 대구 도심의 단독주택가가 '주차 개념'이 없던 1970~1980년대 만들어진데다 '내가 피해를 보진 않겠다.'는 식의 극단적 이기주의까지 겹치면서 갖가지 불법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시에 등록된 차량은 모두 85만 9천여 대. 그러나 이용가능한 주차공간은 전체 차량의 72%인 62만 1천여 면에 불과하다. 무려 23만 8천여대가 설 곳을 잃고 방황하는 셈. 각 구별로도 적어도 4만~5만 면 이상 주차공간이 부족한 형편.

이용가능한 주차공간이 많은 중구의 경우, 대부분 백화점 등 상업시설에 마련된 주차공간이어서 주민들의 주차난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

도심 내 대표적인 주차난 지역으로 꼽히는 중구 남산 3동사무소 인근. 이중 주차는 애교. 차고 앞도 아니면서 '차고 앞 주차금지'라고 적어놓은 입간판까지 여기 저기 머리를 디밀고 있다. 30년 째 이곳에 산다는 정모(65·여) 씨는 "주차 문제가 정답던 이웃들을 다 갈라놓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이웃 간에 주차 때문에 등을 돌리면서 고질적인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한 행정기관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남구청은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클린 파킹제'를 추진했다. 담장을 허물고 집 마당으로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난을 해결 하겠다는 시도. 그러나 5개월이 지나도록 이 제도를 받아들인 주민은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주민들의 외면으로 주차난 해소를 위한 정책이 '공전(空轉)'을 거듭하고 있는 셈.

이에 따라 남구청은 최근 제주도에서 시범 실시하고 있는 '차고지 증명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차고지 증명제는 차량 소유자가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행정기관에서 자동차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 1993년 건설교통부가 주차난 해소를 위해 내 놓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무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주차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야간에 주차 여유공간이 생기는 학교나 관공서, 종교 시설 등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정을 투입, 주차공간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저녁시간에 비는 관공서나 학교, 종교단체 등을 활용하는 게 좋다는 것.

야간에 인근주민들에게 학교를 개방, 37면 규모의 주차공간을 제공하는 대구 경상공고가 좋은 예다.

강승규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지차제들이 공영 주차장을 확보하는 한편 야간에 이용이 가능한 관공서나 학교, 종교단체 등의 여유 공간을 주차공간으로 활용할 필요있다."고 말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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