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꼴찌에게 박수를!

계급이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의 눈엔 온통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만 눈에 띈다.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은 貧富(빈부)의 잣대로, 美(미)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은 美醜(미추)의 저울로만 재려 한다.

유학·연수 등을 위한 해외 장기 체류자가 작년에 최초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조기 유학은 6년 새 10배, 초등생은 30배나 급증했다. 글로벌 경쟁시대다.

우리는 1등·일류를 좋아한다. "호오~"하며 시선부터 달라진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인 것쯤은 알지만 2대 대통령엔 머리만 긁적인다(답은 존 애덤스). 대서양 최초 단독 비행에 성공했던 찰스 린드버그는 기억하지만 1주일 후 더 적은 연료로, 더 빨리 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한 버트 힝클리는 미국인조차 잘 모른다. 린드버그보다 더 뛰어난 조종사였지만 '최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케팅 비결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의 하나가 "The Law of Leadership" 즉 '先導者(선도자)의 법칙'이다. '더 좋은 것' 보다는 '맨 처음 것'이 사람들에게 훨씬 잘 기억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競走馬(경주마)가 얼마전 은퇴했다. '하루우라라'라는 10살짜리 말. '화창한 봄날'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성적은 형편없었다. 1998년 데뷔전 때부터 만년 꼴찌였다. 무려 113 連敗(연패)!

체격부터 열세인 하루우라라는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만 언제나 전력질주했다. 사람들은 우승 가능성 제로의 말을 위해 기꺼이 馬券(마권)을 샀다. 100연패를 기록했던 날엔 5천 명이 넘는 팬들이 하루우라라를 응원하기 위해 경마장으로 몰려들었다. 유명 기수가 하루우라라를 타고 달렸던 2004년 3월엔 마권이 5억 엔어치 이상 팔려나갔다. 성적은 10등, 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하루우라라에게서 사람들은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다. "단 한 번도 1등을 해보지 못한 내 인생과 같구나."그러면서 "다음번엔 잘 할 거야"하며 희망을 배우기도 했다.

세상은 승자와 패자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되고 싶어하나 현실에선 하루우라라 같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열심히 뛰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지더라도 꼼수 안 부리는 성실한 꼴찌에게 박수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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