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 한번 해볼까 하는데요?" "어디에서요" "살고 있는 이 아파트에서요." "농담도 잘 하십니다." "진짜예요. 너무 경관이 좋아 우리 부부만 보기 아까워서 그래요."
여전히 낙천적이었다. 특유의 너털웃음도 그대로였고, 사람을 정겹게 대하는 모습도 변함이 없었다. 정장식(56) 전 포항시장. 한나라당 경북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낙선한 후 한때 출입을 거의 하지 않은 바람에 일각에서 '포항을 떴다.'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는 포항 환호동 해맞이그린빌아파트에 새 둥지를 틀고 있었다.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한 부인 조애경(53) 씨와 둘이 생활하고 있는 20층 아파트에 들어서니 시원한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매일 새벽 명상을 한다는 거실에선 그가 재임 중 꽤 열성을 모아 조성한 호미곶 일대가 그림처럼 다가오고, 포스코와 영일만, 환호해맞이 공원이 손에 잡힐 듯했다.
"아침마다 영일만 일출 보는 재미가 나름대로는 쏠쏠하지요."
서울대 상대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공직 34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그는 오랜만에 요즘 부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 신혼같다며 껄껄 웃는다.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일까. 얼굴이 포항시장 재임 때보다 훨씬 맑다.
"새 명함 나왔어요." '대구대학교 상경대학 무역학과 객원교수 정장식'.
"9월부터 출강하고 있어요." 그는 대학 강의가 아직은 긴장의 연속이라고 했다. "대학 3년의 막내딸이 그러더군요. '아빠 강의 잘 하세요. 시원찮으면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니까요.' 백수 신세를 면케 해 준 학교를 위해서라도 그렇고 해서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만 평가는 어떨런지…. 강의 준비로 밤새울 때가 많습니다."
학교 측 배려로 연구실도 갖고 있다. 오전 8시면 퇴임 후 마련한 승용차를 직접 몰고 경산까지 갔다가 오후 6시쯤이면 집에 와 책속에 파묻히는 것이 최근의 반복되는 일과다. 10월 하순부터는 포항에 있는 한동대에도 출강키로 되어 있어 지금보다는 더 바빠질 것 같다고 했다.
30대 말에 거창군수를 지낸 그는 정말 잘 나가는 공무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상주시장, 청와대 행정비서관…, 거기에 8년간의 포항시장.
그는 그 경력을 바탕삼아 경북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허허. 다 제가 못났기 때문 아니겠어요." 막힘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그는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두 달쯤은 솔직히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늘 멍한 상태였고, 인간적으로 괴롭기까지 했으나 지금은 극복했다고 한다.
그는 위기를 넘기는 데에는 부인의 역할도 컸지만 그의 영원한 내조자인 모친의 격려가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모친이 '고난으로 생각말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시련의 기간으로 여겨라.'며 따끔하게 질책하시더군요." 매몰찬 채찍질을 받은 이후 그는 우선 마음부터 비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별 탈 없이 공직을 마무리한 것만 해도 분에 넘친 감사함으로 생각하니 일상사 등 모든 것이 평온해지더라며 "아직 수양이 덜 돼 낙선 후 갈팡질팡한 것 아니었겠느냐?"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지금의 상황을 '길'과 '운전'에도 비유했다. "포장도로를 달린 공직 기간 중에는 운전하기 바빠 옆도 살피기 어려웠는데 비포장도로에 서고 보니 이젠 길가의 꽃도 보이고 시냇물도 보입니다. 자연스레 인생의 폭도 넓어지더군요. 저의 부족한 여러 면을 보충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필가로 등단 후 '뒤집어 본 세상이 더 아름답다' 등 3권의 에세이를 발간하기도 한 그는 요즘 또 다른 신간 준비에도 골몰하고 있다. 가칭 '시대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이란 책으로, 이미 원고는 80%쯤 완성해 놓았다.
그동안 선거 때 자신보다 더 열심히 현장을 누빈 부인에게는 '주말 청소'를 공약, 실천하고 있다. 또 틈나면 서울로 가 딸들(그는 딸 둘을 뒀다. 자신을 따라 다니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5번이나 옮겼다는 맏딸 승아(29)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안과 레지던트 3년차이고, 둘째딸 윤화(26)는 서울대 의류학과 3년 재학 중. 맏사위도 레지던트 3년차다.)을 만나 공직에 있을 동안 못다한 아빠로서의 정도 나누고 있다고도 했다.
"돌아보니 지혜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좀 더 잘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꿀 바른 음식이 달지 않고, 바다 물건이 짜지 않다'라는 채근담의 한 구절처럼 덕을 더 쌓고, 정직하고 바르게 살도록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한번 더 경북도지사 선거에 도전할 것이냐?"는 질문엔 "앞으로의 계획요? 솔직히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다만 지역과 나라를 위해 일할 소신과 마음은 갖고 있습니다. 또 다가올 대선에도 깊이 참여할 생각이구요."라고 말했다.
'아픔'이 있었던 만큼 정치에 대한 의욕은 포항시장 재임 때보다 오히려 더 강한 듯 보였다. 인터뷰 내내 지인들로부터 '힘내라.'라는 적잖은 전화가 걸려왔다. 시간을 쪼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선후배 및 정치인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의 진로도 논의하며, 세상 보는 눈을 키우고 있다고도 했다.
"경북의 미래요? 지금 지사님이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대구하고 경북이 같이 움직여서 서로 보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혜를 주더라도 외지 자본 유치를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포항·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