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문수영 作 11월에

달력 위의 숫자가 점점 커지면서

얄팍해진 그림자 사이로

들려오는 굵은 바리톤 음성

여름내 치열하게 흐르던 강을

건너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는 가지를 위로 세워

맨몸으로 일어선다.

일어서자.

강 건너 불빛,

태우지 못한 시각(時刻)을 돌아보고

남아 있는 시간에

불을 댕긴다

조심스레 걸어온 한 해

가슴 저린 11월에

야무지게 남겨 둔 빈 뜨락으로

달려가야지.

11월, '달력의 숫자가 점점 커지면서'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 '여름내 치열하게 흐르던 강'의 삶을 기억하라고 당부하는 '굵은 바리톤 음성'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비록 잎을 벗어버린 앙상한 나무지만 '가지를 위로 세워/ 맨몸으로 일어서'지 않는가. 우리도 나무처럼 '일어서자.' 우리를 부르고 있는 '강 건너 불빛'이 보이지 않는가. 미처 '태우지 못한 시각(時刻)을 돌아보고' 회의에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에/ 불을 댕'겨야 하리. 그리하여 '야무지게 남겨둔 빈 뜨락'에 뿌리 깊은 삶의 나무를 가꾸어야 하리.

11월은 당찬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간일 것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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