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대통령-고건 '갈등 재점화' 배경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전 총리 간의 갈등이 또 다시 점화됐다. 노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자신은 고 전 총리를 비방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며 "두 번 세 번 해명을 했는데도 (고 전 총리는) 전혀 미안하다는 표정이 없어서 섭섭하다."고 직공한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 머리에서 '작심한듯(?)' 말을 꺼냈다. 술은 맛도 좋아야 하지만 뒤가 깨끗해야 한다며 말문을 텃다. 술 뿐만 아니라 사람도 뒷모습이 좋아야 하는데 고 전 총리는 그렇지 않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뒤 끝이 좋지 않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남자가 말이 많다.'는 말처럼 인간적 모멸감까지 느낄 수 있는 성격이다.

노 대통령은 또 자신은 고 전 총리를 비방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며 "두 번 세 번 해명을 했는데도 (고 전 총리가) 전혀 미안하다는 표정이 없어서 섭섭하다."면서 가슴 속에 담아뒀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대통령이 동네 북이 된 것을 민주주의의 비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 있다."고 전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사람(고 전 총리처럼 참여정부에서 일한 사람)이 대통령을 동네 북처럼 이렇게 두드리면 저도 매우 섭섭하고 때로는 분하다."고 했다.

하나하나가 상당히 수위가 높은 말들로 고 전 총리측으로서는 '충격'일 수 있다. 이에 따라 고 전 총리와 그의 캠프는 25일까지만 해도 "더 이상 입장 표명을 하지 않겠다."고 정면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 그럴 수만은 없는 입장에 몰린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이날 고 전 총리에 대한 섭섭한 마음의 토로는 외관상 고 전 총리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한 번 더 곱씹어 보면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할지도 모를 범여권의 대권 후보에 대한 경고이자, '군대 발언'과 관련해 반발하고 있는 전직 국방장관 등 역대 군 수뇌부들에 대한 섭섭함의 간접적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풀이다.

대권 후보가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는 것은 일종의 인습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랬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랬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점을 의식, "한 때 차별화가 그렇게 유행하던 시절 기자들이 매일 찾아와서 당신 차별화하지 않냐라고 그렇게 부추기던 시절에도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변호했고, 국민의 정부를 변호하는 말만 그렇게 해 왔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동안 여러 차례 제가 공격을 받아도 참아만 왔는데 앞으로는 하나하나 해명하고 대응할 생각"이라고 밝힌 대목은 고 전 총리에게도 적용되지만 다른 여권의 대권 예비후보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그 누구의 차별화 시도에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대통령을 동네북처럼 두드려서는 안될 사람에 전직 국방장관이나 군 수뇌부가 포함될 수 있어 '군대 발언'에 대한 강한 반발을 누르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군대 발언'에 대한 나쁜 여론은 정서적인 측면이 강한만큼 직접 대응하지 않고 고 전 총리에 대한 비판을 통해 간접 대응한 것이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여기다 범여권의 대권 경쟁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전략에서 고 전 총리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열린우리당이 분당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인 당사수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범여권의 후보를 공격하고, 전직 총리가 대통령을 비판하는 초유의 사태는 여권의 빅뱅과 맞물려 격화되고 있는 국면이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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