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즘 어떻습니까] 이승주 국제염직 대표

초창기 섬유 산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이승주(78) 국제염직(주) 대표. 그의 행적은 그가 우리나라 섬유 산업의 선도적 인물임을 의심치 않게 한다. 1970년대 초반 폴리에스테르 직물 감량가공 첫 개발, 1980년대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 8년 역임, 대구 등 전국 대도시에 염색전용공단 유치, 열병합 발전소 건립, 낙동강 공업용수 활용…. 이런 노력으로 이 대표는 하나도 받기 힘들다는 국가 훈장만 4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하고 한 섬유회사 대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아직 그의 머릿속엔 '대구 경제와 섬유 산업'이란 화두로 가득했다. 2시간 동안의 줄기찬 이야기 속에는 현실에 대한 우려와 비판 못지않게 '희망'이란 단어도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현재 대구시 원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이 대표는 대구 경제에 대한 방향에 대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지면 필연적으로 제 2 경제권이 형성됩니다.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라 더 커지기 힘들지요. 따라서 제 2 경제권인 영남 경제권이 이탈리아 밀라노나 일본 오사카처럼 자랄 겁니다. 그 중심이 대구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장밋빛 구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대표의 주장엔 충분한 논리가 깔려 있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변두리라 중심 역할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 이 대표는 "대구는 지리적으로 중간에 위치한데다 항구 역할을 할 수 있는 포항도 이젠 40분 거리로 가까워졌기 때문에 유리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이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대구가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선 구미, 영천, 포항을 잇는 산업벨트 형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선 행정가들보다 지역의 토착 리더가 있어야 된다는 것. 그러면서 매일신문 같은 지역 언론의 역할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섬유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그이기에 자연스레 이야기 주제는 섬유 산업으로 옮겨갔다. 이 대표는 지금 섬유 산업의 전반적인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일부에서 섬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이야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대구와 같이 섬유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도시가 없고 수십 년 간 노하우가 축적된 곳이 없는데 이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섬유도 전환기에 있습니다. 과거 섬유 시스템은 후발 경쟁국가에게 넘겨주고 새로운 소재의 첨단 섬유로 발전시켜야 하죠. 이런 과정에서 업계 구조 조정이나 개선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섬유가 인류가 생존하는 한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의 고비만 슬기롭게 넘긴다면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업종이라는 거죠."

팔순을 바라보는 지긋함에도 차분하면서 힘을 잃지 않는 목소리는 이 대표의 규칙적인 생활에서 비롯된다. 이 대표는 항상 오전 7시 기상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30분 간 뜀박질을 한다. 또 일주일에 최소한 한차례는 골프를 친다. 평범하면서도 규칙적인 평소 운동이 아직 기업을 손수 꾸려가는 힘이 되고 있단다.

이 대표는 바쁜 와중에도 하루에 5시간 정도는 컴퓨터와 독서, 신문 읽기에 투자한다. 특히 컴퓨터에 무척 약한 세대임에도 최근 이를 배워 인터넷 검색에 한창이다. 일본 야후 등에 들어가 일본의 최신 섬유 기술을 샅샅이 뒤져 습득하기 위해서다. 젊었을 때 섬유업체에 취직해 각종 공정 구조개선 등 획기적인 건의로 다니는 회사를 일약 3대 섬유업체로 만들어놓은 부지런함은 나이가 들어도 어디 가질 않는 모양이다. 이 대표는 "가끔 자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는데 자녀들이 너무 자주 보낸다고 한 번씩 핀잔도 준다."며 우스갯소리도 한다.

이 대표는 최근 자신의 회사에도 경쟁 시스템을 도입시키는데 최우선을 두고 있다고 했다. 무한 경쟁 시대에서 경쟁이 없는 조직은 결국 쇠퇴하기 때문이라는 것. "잘 하는 사람에게는 포상을 하고 인센티브를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간관계로 쌓여온 회사 분위기는 쉽게 고치기가 힘이 드네요."

어느 순간 화제는 현재의 중소기업 정책으로 넘어갔다. 한창 때 대기업을 상대로 성토를 해가며 중소기업 첨병 역할을 했던 이 대표였다. 당연히 현 대기업 우선 정책에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중산층과 중소기업들은 대몰락했고 대기업들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습니다. 과거처럼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많이 사라졌어요. 결국 사회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정부가 자꾸 분배에만 치중해 기업들이 점점 부담을 느낀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치가 자꾸 기업들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수출 중소기업들이 최근 환율이 너무 내려 아우성인데 정부에선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일본의 선례처럼 정부가 환율 대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1996년 '자랑스런 연세인상'을 탄 것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첫 번째로 수상한 것이라 더욱 값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대표는 "이 상이 상징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동안 부끄럼 없이 지역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랐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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