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장자)' 외편에 요임금과 국경을 지키는 封人(봉인)의 대화가 나온다. 요임금이 華(화) 지방을 순시하는데 봉인이 오래 사시고, 부자 되시고, 아들 많이 낳으시라고 덕담을 했다. 그러나 요임금은 부자될 마음이 없고, 長壽(장수)나 많은 아들도 사양한다고 말했다. 봉인이 그 이유를 묻자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늘고, 돈이 많으면 일이 늘며, 오래 살면 수치스러운 일들이 늘어나니 이는 德(덕)과 관계없기에 사양한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보통 사람이면 속으로 "거 참, 이상한 사람이네. 제 아무리 임금이라도 이렇듯 덕담을 무시하다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봉인은 "아들이 아무리 많아도 각자 할 일이 다른 법이라 걱정할 일이 없고, 부자가 된다 해도 남과 나눌 줄 알면 근심할 일이 아니며 천 년을 살아도 세상이 싫어지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그만인 것을 근심하고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느냐"고 한마디 한다.
○…새해가 밝았다. 음력 정월이 한달 보름여 남았지만 丁亥年(정해년)이다. 새해를 맞으면 만나는 사람에게 덕담을 건넨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 되라, 건강해라, 아들 낳으라'는 덕담은 그대로다. 요임금 생각과 달리 덕과 관계없지는 않을 성싶지만 그저 복 많이 받으라는 '빈 말'임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나보고 잘되라고 하는 소린가 보다"며 그냥 듣는다.
○…해마다 건성으로 건네는 덕담이지만 조금이라도 이뤄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나한테만 發福(발복)할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고루 발복하기를 기원하면 새해 인사로는 그만이다. 봉인의 덕담을 그냥 듣고 말았다면 요임금은 君子(군자)가 아니라 聖人(성인)으로 대접받았을 터인데.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거나 때로 아무리 귀가 얇아진 현대인이라 하더라도 이 대화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겸손과 절제, 과욕의 덕은 중요하다. 하지만 봉인은 요임금에게 無私(무사)와 無執(무집), 無功(무공)한 성인의 도를 들려주고 있다. 옛 현인들은 덕과 도가 있으면 무엇이든 이룬다고 했고, 장자는 수십 편의 이야기를 통해 '사물의 가치가 모두 같다'는 萬物齊同(만물제동)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인간이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고 차별함으로써 분열과 대립이 생기나 '흐르는 강물처럼, 경계 없는 바람처럼'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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