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주연을 받쳐 주는 조연 시대는 지나갔다. 맛깔 나는 감초 연기로 주연보다 더 주목 받는 조연들이 전성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조연급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주연 배우 못지 않은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요즘 지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조연 배우는 조영준(28) 씨다. 지난해 최대 히트작으로 꼽히는 연극 '집도 절도'에 조달봉 역으로 출연, 고감도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헐렁한 운동복 차림에 정리되지 않은 머리, 공무원 시험 준비는 뒷전이고 여자 잘 만나 팔자 고치려는 청년 백수생활이 몸에 뱄다는 오해를 살 만큼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계에서 조달봉으로 통한다. '집도 절도'에서의 호연 덕분에 관객들도 본명 대신 조달봉으로 그를 기억한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맹활약하고 있는 조영준. 그는 그동안 주연보다는 조연, 정형화된 역할보다는 독특한 배역을 주로 맡아 왔다.
지난해 연극 '죽어도 좋아'에서는 할머니인 영천댁,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로미오의 흑인 친구이자 게이인 머큐쇼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오는 18일부터 2월 25일까지 아트홀 더 시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에서는 또다시 '달봉'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연한다. 매일 만화방을 찾아와 둘리 만화만 보는 '달봉'은 자신이 둘리처럼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정신 지체장애 어른으로 본의 아니게 극의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주목 받는 주연이 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배우로서 연기 변신은 꼭 필요합니다. 조달봉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를 언젠가는 벗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연극을 배우는 중입니다. 어설프게 여러 배역을 따라 하는 것보다,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캐릭터를 확실하게 구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데뷔 무대인 대구연극제 참가작 '풍동전'(2004년)에서 장사꾼·포졸·머슴 등 1인 다역을 소화해내며 우수 연기상을 거머쥔 심상치 않은 이력이 말해 주듯 그의 연기를 보면 캐릭터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천댁 배역을 맡은 뒤로는 틈만 나면 시장에 갔다. 할머니들을 관찰하며 말과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배웠다. 머큐쇼 역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수도 없이 봤다. 달봉역에 캐스팅된 후부터는 영화 '마라톤' 등을 보며 캐릭터 분석을 하고 있다.
그의 이런 노력이 흡인력 강한 캐릭터 연기를 선보이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젊은 배우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조 씨는 끼 많은 개그맨 지망생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게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개그맨 시험도 몇 번 보았습니다. 연극인이 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1998년 계명대 통상학과에 입학한 그는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처럼 우연히 계명극예술연구회 오디션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무대에 올라가 연극을 해보니 참 재미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 보지 못한 인생을 경험하고 관객들에게 웃음도 줄 수 있어 연극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연극이 삶의 전부가 되었지만 그동안 여러가지 갈등도 있었다. 2001년 군 복무를 마친 후 연극 대신 취직 공부에 전념하려고 생각했었다. 지역에서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든 생활의 연속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 씨는 계명극예술연구회 후배들이 마련한 연극을 마지막으로 도와 준다는 생각으로 연극무대에 선 것이 화근(?)이 되어 연극인의 삶을 굳히게 되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연극 무대에 섰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8월에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연극인으로 살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만 이제는 기왕이면 열심히 잘 하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는 이제 개그맨·샐러리맨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불효하는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리지만 남들에게 인정 받는 배우가 되어 부모님을 제 연극 무대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는 한국의 짐 캐리를 꿈꾸고 있다. 영화 '맨 오브 더 문'에서 보여준 짐 캐리의 연기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가슴 속 깊이 각인된 후부터다.
"올 한 해 지역 연극계에 대박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허전한 가슴을 채워줄 여자 친구도 만나고 싶습니다." 조영준의 새해 소망이다. 무대에 서면 거침 없는 그가 올해 연인과 지역 연극팬들의 사랑을 모두 차지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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