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 권력 유지를 민주 세력과 시민의 역량으로 저지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직선제 이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평가가 엇갈리는 6월 항쟁에 대해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그 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봤다.
"어느 특정인 또는 어떤 집단의 힘만에 의해 6월 항쟁이 성공했다고는 보지 않아요. 데모대에 박수를 보내주고, 빵과 물을 건네주는 등 이름없는 시민들의 저력이 한 데 모여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고 봐야합니다."
꼭 20년전인 87년 6월 동성로 등 대구 중심가에는 "호헌철폐" "직선쟁취"와 같은 구호와 '농민가' 등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그 6월 항쟁의 현장인 동성로에 다시 선 김용락(48·경북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시인과 윤종화(39)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 당시 20대 후반의 청년,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으로 6월 항쟁에 적극 참여했던 두 사람은 6월 항쟁을 되돌아보며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김 시인은 "6월 항쟁이라고 하면 '변화' '꿈틀거림' '폭발'이란 어휘가 먼저 떠오른다."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는데 6월 항쟁이 밑바탕이 됐다."고 강조했다. 윤 처장 역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아직 진행형이지만 진행형을 만들어준 시발점이 바로 6월 항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안동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김 시인은 87년 4월 사표를 내고, 대구에 와 민주문화운동연합을 결성해 문화운동을 하던 중 6월 항쟁에 참여하게 됐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해 당시 군사정권 아래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우리나라가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6월 항쟁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윤 처장은 "87년은 나의 삶에서 가장 뚜렷하게 각인된 시기"라고 했다. 당시 경북대 철학과 1학년에 다니던 그는 선배들을 따라 거의 매일 데모에 참여했다.
"적게는 1만, 많게는 3만여 명이 매일 데모에 참가했어요. 몇천 명씩 대열을 나눠 중앙로, 서구청 등 각 방향으로 행진할 정도로 참가자가 많았습니다." 그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자'는 6월 항쟁의 구호와 메시지가 많은 시민들에게 공감대를 얻은 덕분에 데모 참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6월 항쟁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도 경험했다. "아카데미 극장 앞을 지나는 순간 육교 위에서 뭐가 떨어지더군요. 주워보니 빵이었습니다.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시민들이 빵을 던져준 것이지요." 버스를 타고 가던 시민들은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지않고 오히려 박수를 치며 격려했고, 물과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데모를 하던 학생들이 경찰에 잡혔을 때엔 "왜 죄없는 학생을 잡아가느냐."며 항의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김 시인은 "YMCA 앞에서 전투경찰이 데모대에 잡혀 무장해제를 당하고 구타당할 순간에 보내주자고 데모대를 설득, 무사히 보내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 시인과 윤 처장은 6월 항쟁에 참여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했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고, 민중의 힘을 직접 확인했다는 것은 저에게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김 시인)." "귀가할 때엔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고, 다음날 아침에는 다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다시 데모에 참가했어요. 제가 20년째 시민운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6월 항쟁을 통해 시민들의 힘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윤 처장)."
일부에서 6월 항쟁이 직선제 외엔 이뤄낸 것이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두 사람은 견해를 달리했다.
김 시인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거리로 나온 사람 중 일부는 세상이 바뀌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바뀌는 '변절'을 하기도 했지만 6월 항쟁 정신은 분명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됐다."고 밝혔다. 윤 처장 역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고, 사람을 고문해서는 안된다는 등 지금은 당연시되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계기가 6월 항쟁"이라며 "국민들의 에너지가 한 데 결집돼 한국의 현대사를 바꿨다는 점에서 6월 항쟁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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