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꿈 나의 삶, 김수학] 부부 십계명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들이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간 큰 남자 시리즈가 거론되는 때일수록 가장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금도 안사람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것은, 1964년 동남아 출장을 갔을 때, 달포 동안이나 집에 연락을 하지 않은 일이다. 무정했다는 타박을 회피하기 위해 꾸며대는 遁辭(둔사)는 아니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여비의 여유도 없었다. 연간 국민소득 100달러이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는다 해도 역시 무심한 성격 탓이리라. 내자의 생일 한 번 챙겨준 적 없고, 그 흔한 여행 한 번 데리고 가지 못했으니 내자는 온갖 설움을 속으로만 삭였을 것이다.

전남 부지사로 있을 때였다. 내자가 도청 국장 부인들과 대흥사를 가려 한다며 내 의향을 물어왔다. 물론 내자가 주도해서 계획한 일은 아니었다.

"집어쳐라 마! 지금 가뭄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운데 무슨 놈의 관광이고?"하고 호통친 일이 있었다. 경북지사로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관장 부인들이 해안경비대 위문 차 울릉도에 가자고 하는데 우짭니꺼?"

"안 된다, 가지 마라. 울릉도엔 변변한 여관이 없어 으레 군수 관사에 묵게 마련이다. 그런 폐를 왜 끼치노?"하며 내자의 여행을 또 저지시켰으니 내자는 칠십이 가까워오는 나이에 여행 한 번 제대로 한 일이 없다. 그러나 내자는 고맙게도 그 모진 세월을 잘 견뎌주었다.

사실 부부사이는 천재지변이나 운명적 이별이 없는 한 '기정사실'이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일지 모르나, 괜히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소리들을 해서 뭐하겠는가.

내가 내자에게 느꼈던 애정은 요즘 신세대들이 얘기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서로 만나 각자 제몫을 담당하며 살아온 세월에 농축된 정일 것이다.

사실 부부간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정이 오가게 마련이다. 또 세월이 가면 서운했던 일들도 모두 녹게 마련이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유교적 전통에 익숙했던 교육 등을 감안해 볼 때, 남편으로서 나의 점수는 과락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가끔씩 벌어지는 부부싸움도 필연적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상대가 큰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서로간의 스트레스가 가중되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엉뚱한 화살이 돌아가는 일이 있다. 나의 경우, 부부싸움을 할 때면 효과음의 일환으로 창호지문을 주먹으로 내리치곤 했다. 내자는 유교적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 남편에게 함부로 하는 일은 없었지만 "펑!" 소리와 함께 말다툼은 나의 優勢(우세)로 전환된다. 그러나 아내 구타 등의 행위는 범법인 시대가 되었음도 잊지 말아야겠다.

또한 부부간에는 필연적으로 거짓말이 오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울적한 마음에 술 한 잔을 걸치고는 "상사가 먹자고 해서 억지로 끌려갔다."는 식의 거짓말도 있을 수 있고, 술집 아가씨와 산책을 하고 와서는 "야근했다."는 식의 거짓말들도 있었다. 그러나 단언컨대 잡아뗄 것은 딱 잡아떼야(?) 가정이 편안하다는 사실이다.

"무작정 산 세월입니다."

요즘 들어 가끔 내자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랬을 것이다. 50여 년간 큰 무리 없이 공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공로를 내자에게 돌리며, 새삼스럽기도, 쑥스럽기도 하나 이제야 내자에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면 지난 세월을 1%라도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가?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되는 요즘, 내자의 두터운 손마디에 비로소 가슴이 뭉클한 것은 비단 나이 때문만은 아니리라.

전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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