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이든 밥상머리에서 아이와 한 번쯤은 실랑이를 벌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스턴트나 고기 반찬에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들이 김치나 나물을 꺼리는 것은 대부분 부모들의 고민이다. '몸에 좋으니 일단 먹어보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도무지 전쟁이 따로없다.
이런 입씨름에 지쳤다면 다른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일단 아이들이 채소와 친해진다면 어떨까. 채소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채소를 통해 좋은 교훈까지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서가를 돌아다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즈음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채소야 놀자(김은숙 글/가문비 어린이 펴냄)'는 지난 연말에 발간된 어린이 동화집이다. 연필 소묘로 그린 가지, 무우, 배추 등 채소들의 얼굴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그것처럼 익살맞고 귀엽다. 책 내용도 비교적 얇고 활자도 커 초등 저학년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성 싶다.
이 책은 채소가 주인공이 돼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준다. 도시 아이들이 잘 알지 못하는 시골 풍경과 밭에서 직접 채소들을 재배하는 모습들이 정답게 묘사돼 있다.
'김치가 왜 맛있는 줄 아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엉뚱하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볼 만하다. 김치가 맛있는 이유는 배추가 김치가 되기 위해 다섯 번이나 자신을 죽인 덕분이라는 걸 아는 이가 몇이나 될 지. 배추는 밭에서 뽑혀 나올 때 처음으로 죽고, 꼬랑지가 잘려 나갈때, 소금에 포옥 절여질 때, 고춧가루, 젓국으로 버무려질 때, 그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캄캄한 김장독에 갇혀 죽는다. 그러나 다섯 번 죽은 배추는 김장독 속에서 숨을 쉬면서 맛있는 김치로 부활한다. 김치에 대한 애정이 절로 생길 것 같지 않은가.
모두 8편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이 책에서는 제법 철학적이거나 감동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름이 '보라'인 냉이의 얘기를 들어보자.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겨우 움을 튼 냉이는 나물을 뜯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는 반찬이 되어야 할 처지. 하지만 '세상의 숨 쉬는 것들이 위대하다는 건 죽기 때문이야. 죽어야 살고 죽을 수 있어 행복한 것이지'라고 되뇌는 대목에선 감동까지 밀려온다.
지어낸 이야기들이라 책에 등장하는 상추, 감자, 시금치, 배추의 수다가 다소 억지스럽고 동화(?)스럽기까지 하지만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한 번쯤 쥐어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채소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오늘 저녁 아이와 상추쌈, 배추쌈을 해 먹는다면 조용하던 밥상이 채소 이야기로 시끌벅적해지지 않을까.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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