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채업체 고객 정보도 은밀히 거래

'사채를 쓴 당신의 신용정보가 팔리고 있다.'

지난 29일 무허가 사채업소를 차려놓고 불법 고리대금업을 한 사채업자가 경찰에 붙잡혔다.(본지 29일자 6면 보도) 이들은 신용불량 등을 이유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고객의 약점을 이용해 수백 %의 이자를 받는가하면 수백 명의 신용정보를 '엑셀 파일'로 저장해 같은 사채업자끼리 공유하거나 사고 판 것으로 드러났다. '사채를 쓰면 쓸수록 높은 이자'를 물리는 등 이용자에게 겹고통을 주고 있다.

◇사채의 쳇바퀴, 빠져나오기 힘들다

미용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A씨(30·여)는 지난해 4월 한 사채업소에서 200만 원을 빌렸다. 전세금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200만 원을 빌렸으나 수입이 적어 더 이상 대출이 어렵다는 얘기에 어쩔 수 없이 '사채'에 손을 댄 것. '저금리 대출'이라고 소개된 생활정보지를 보고 업소를 찾은 그는 주민등록초본, 등본, 인감증명서를 제출한 뒤 선금 40만 원을 제외한 160만 원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급전이 필요했던 그는 같은 해 6월 같은 사채업소를 찾았지만 "신용도가 낮아 더 이상 대출이 어렵다. 다른 곳을 소개해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새로운 사채업소를 찾았다. 대부거래표준계약서, 금전차용각서, 지급각서, 물품보관증, 위임장, 각서 등을 쓰고 다시 200만 원 대출에 선이자 40만 원을 제외한 160만 원을 빌렸다. 10일마다 이자를 19만 원씩 내야한다는 각서까지 써 그동안 A씨가 20차례에 걸쳐 이자만 380만 원을 냈다. A씨는 "사채업소에서 대출정보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꿰고 있었는데 언제, 어디서 사채를 썼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며 "사채를 쓸수록 신용도가 낮아 이자를 올려야 한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3년 전 사업부도로 신용불량자가 된 B씨(44). 금융대출이 어렵자 지난해 초 사채 100만 원을 빌려썼다. 선금이자는 18만 원이었고 지난 1년동안 매월 13만 원씩 이자를 냈다. 그는 "부도로 수입이 없었고 마땅히 돈을 빌릴 곳도 없어 사채를 쓰게 됐지만 고리이자의 늪에 빠질 줄 몰랐다."며 "아직 원금도 다 갚지 못해 이자 갚는데만 모든 수입을 날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채고객 리스트, 매매된다

29일 경찰에 구속된 사채업자 경우, 사채대출 상담자들의 성명, 상담일자, 주민등록번호, 대출금액, 주소, 회사명, 직급 등을 파일로 작성, 보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불법 사채업자들과 고객리스트를 이메일 등으로 교환하며 고객을 관리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 불법 사채업자가 조직적으로 신용정보를 유출하고 있으며 수법도 다양해졌다고 지적했다.

리스트 매매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우선 사채업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야 볼 수 있는 '신용정보 조회망' 사이트를 개설, 월 3만 원씩 월정액을 받은 뒤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사이트는 노출이 쉽다는 약점이 있어 1만 명 정도의 고객정보를 CD로 만들어 일정 금액을 받고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또 최근에는 사채업자들끼리 조직적으로 연계망을 구성해 '전화 조회'로 사채정보를 알 수 있게 하는 신종 수법도 등장했다. 월정액 13만 원을 내고 회원 가입을 하면 수년 간 사채대출상담을 받았던 고객의 신용 및 개인정보를 한번에 알아낼 수 있다.

◇무조건, "대출됩니다."

사채업자들은 상담 의뢰가 들어오면 "무조건 대출가능하다."며 사무실로 끌어들인다. 그 사이 사채업자들은 '그들만의 정보망'을 통해 의뢰자의 신용정보를 파악한 뒤 "언제, 어디서, 얼마의 사채를 썼기 때문에 신용도가 좋지 않아 이자를 몇 % 더 올려야 대출이 가능하다."고 꾀이는 방법으로 돈을 빌려준다. 사채업자들끼리 거래처를 소개해 이자를 올려받는 경우도 적잖다는 것. 이 같은 불법 정보공유로 인해 사채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고객은 '사채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이자를 갚기 위해 또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사채의 쳇바퀴'에서 파산으로 치닫고 있는 형편이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에만 1천700여 곳의 정식 등록 사채업소가 있지만 경찰은 미등록업소까지 합하면 약 3천 곳 정도가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안재운 북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사는 "불법 사채업자의 고객정보에는 병원 직원, 주부, 자영업자 등 수많은 직종의 시민들이 포함돼 있으며 일부는 매달 높은 수수료의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다."며 "금융대출을 못 받는 고객과 고리로 융자해주는 사채업자는 일종의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들의 정보를 사고 파는 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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