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현종9년(1018년) 거란은 국왕의 친조(상대 나라의 왕이 직접 방문해 인사를 올리는 것)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소배압(소손녕과 형제)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제3차 침략을 감행해왔다. 이전 고려는 태조 때부터 발해를 멸망시키고 압력을 가해오는 거란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 이로 인해 993년(성종 12) 소손녕에 의한 거란의 제1차 침략을 받는다. 하지만 서희의 담판으로 압록강 하류의 강동6주를 회복한다.
그렇지만 이곳이 군사적 거점이 되자 이를 차지할 목적으로 거란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1010년(현종 1) 제2차 침략을 시도하여 개경까지 함락 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다시 철수한 적이 있었다. 당시 3차 침입에 대해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아 맞서 싸우게 했다. 소배압의 거란군은 개경 부근까지 무리하게 내려왔으나 잦은 패배로 병력의 손실이 크자 정벌을 포기하고 회군 1019년 2월6일 평안도귀주에 다다르게 된다. 강감찬은 기병을 시켜 가죽주머니로 강 상류를 막아 적군이 통과할 때 터뜨려 추위에 지친 거란군에 대승을 거둔다. 이때 살아 돌아간 병력이 수천 명에 불과 거란이 국왕의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다시는 요구할 수 없게 됐다.
▲ 1886년 노비제도 폐지 ▲ 1952년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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