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하반신 마비 신랑 돌보는 손형심 씨

그 남자

앉은뱅이 장애인을 사랑하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온몸이 썩어들어가 흉측하게 남은 상처 하나까지도 사랑스레 쓰다듬어주는 바보 같은 여자. 병원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먹다 남은 병원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어느새 거칠고 투박해졌지요. 그 모습이 애처로워 떠나달라고 애원도 해봤지만 그녀는 미소만 짓네요. 그녀가 요즘 부쩍 제 품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환자들이 하나둘씩 영안실로 떠나자 겁이 덜컥 난 모양입니다. 가까이에서 제 숨소리를 확인하는 그녀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연탄 가스 중독으로 100일간 의식을 잃었던 그녀는 팔, 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답니다. 뇌를 다쳐 말을 더듬고 온몸이 경직되는 마비 증상을 겪고 있지요. 개원을 이틀 앞둔 음악학원에서 잠을 청한 것이 화근이 돼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이지요. 당시 22세의 그녀. 감당하기엔 힘든 현실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세상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채 20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지요. 세상과 단절한 채 홀로 생활했던 그녀가 제 삶에 들어온 것은 3년 전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기적의 등산'을 꿈꾸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였죠. 카페를 운영했던 제 글귀에 심취했던 그녀와 저는 전화 통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면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전화와 편지글로 사랑을 확인했던 그녀는 끝내 용기를 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심적 강박증으로 건널목 하나 지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전북 익산에서 대구까지 다섯 시간의 대장정을 견뎌냈습니다. 근 20년 만의 첫 외출이었지요. 그날 이후 제 가슴 속으로 들어온 그녀는 병원에서 제 분신이 돼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

좁디 좁은 1인용 병실 침대를 반 이상이나 내어 주는 남자가 있습니다. 하반신 마비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그지만 언제나 가슴 한가득 절 안아주지요. 병원밥을 일부러 반이나 남기는 그는 매번 밥맛이 없다고 합니다.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고 재촉해도 좀체 음식에 손을 대지 않지요.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알게 됐지요. 정부 보조금으로 병원비를 충당하면 한 푼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저를 먹이기 위해 일부러 밥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남긴 밥을 먹으며 한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영양이 부족해서인지 독버섯처럼 번진 병균들은 오늘도 그의 몸을 갉아대고 있는데….

전기 수리공 일을 했던 그는 24세의 나이에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8m 높이의 지붕에서 전기 작업을 하다 발을 헛디딘 것이 평생 설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것이지요.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인 그는 귀금속 가공 기술을 배워 조그마한 가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지요. 장사가 되지 않아 빚더미에 앉게 된 그는 결국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그는 컴퓨터 실무 능력을 배우고 장애인 기능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재기를 시작했지요.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것은 그때부터였지요.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카페에는 20년 동안 가슴앓이 해 왔던 제 삶의 궤적들이 파노라마같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의 고통과 아픔이 제 기억과 동일했고, 그의 좌절이 제 가슴에 멍든 상처와 같았습니다. 순식간에 전 그에게 빨려들었고 그의 곁으로 달려갔지요. 거칠 것이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제 삶의 전부가 돼 버렸답니다.

20일 오전 10시 대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손형심(41·여·지체장애 2급) 씨는 남편 윤광현(49·지체장애 1급) 씨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3년의 병간호 끝에 지난해 12월 혼인신고를 했다는 그들의 얼굴엔 수줍은 미소가 어려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갈 곳이 없었다. 온몸에 퍼진 윤 씨의 욕창 치료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닥친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다. 한평생 처음 찾아온 사랑 앞에 거칠 것이 없었던 그들은 함께라면 얼어죽어도 좋다고 했다. 냉혹한 현실에 버려진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 안타깝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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