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打당 10만원까지…사행성 오락 성행 스크린골프장

종일 20~30명 붙박이

4일 대구 동구의 한 스크린골프장. 지하에 위치한 40평 남짓한 골프장엔 낮시간인데도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 20여 명의 남성들로 북적였다. 실내는 '딱'하는 경쾌한 타구음(打球音)과 두꺼운 천을 때리는 '퍽'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골퍼들은 대형 스크린 앞에서 연신 골프채를 휘두르거나 스크린 위를 떠다니는 공의 궤적을 쫓기 바빴다. 타석에 장치된 스피커에서는 실제 골프장처럼 "파5홀입니다.", "나이스 어프로치" 등 상황에 맞게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첫 번째 타석에서 12번홀이 끝나자 두 타 차로 진 박모(54) 씨가 지갑에서 주섬주섬 만 원짜리 두장을 꺼내 이긴 이모(52) 씨에게 건넸다. 한 타에 만 원짜리 내기 골프를 치고 있었던 것.

이들은 "첫 게임이라 그런지 잘 안 맞네. 다음 게임에는 5만 원으로 올리는 게 어때." "어, 좋지."라고 말을 주고받으며 계속 게임을 했다. 두 명이 18홀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그동안 오고간 돈은 20만 원이 넘었다. 이 업소 업주는 "낮시간에도 골프를 치려면 적어도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며 "내기골프로 수십만 원을 따고 잃는 경우가 적잖지만 손님들끼리 돈 내기하는 것까지 다 막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최근 실내 스크린골프장이 크게 늘면서 사행성 도박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각 홀당 타수의 차이에 따라 돈이 오가거나 수십만 원의 돈을 걸고 가장 잘 친 사람이 가져가는 방식의 내기 골프가 판을 치고 있는 것.

실제 스크린골프장이 1곳뿐이던 수성구의 경우 올 들어서만 3곳이 문을 열었고, 달서구는 8곳 중 5곳이 올해 새로 들어섰다. 대구시내에 있는 스크린골프장은 20여 곳 남짓이지만 조만간 10곳 이상 더 늘어날 전망이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스크린골프장 개장에 관한 문의가 1주일에 2, 3건씩 들어오고 있다."며 "전체 골프연습장 수를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스크린골프장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실제 골프장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사행성 오락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 또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도박에 대한 강력한 단속으로 일부 계층이 찾아낸 새로운 사행성 오락이란 풀이도 있다. 하루종일 스크린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수백만 원대의 '도박'을 즐기기도 한다는 것.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스크린골프장을 찾는다는 최모(60) 씨는 "보통 1타에 몇 천 원~1만 원으로 시작된 내기 골프가 게임이 더할수록 액수가 늘어 10만~2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며 "하룻밤에 200만 원을 잃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퇴근 후 자주 스크린골프장을 찾는다는 김모(45) 씨는 "재미를 위해 1만, 2만 원씩 걸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골프 초보자들을 끌어들여 수백만 원 대의 도박판으로 만드는 '꾼'들도 상당수"라며 "업소에서도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내기골프를 말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행 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스크린골프장은 체육시설업으로 분류, 신고만 하면 누구나 개업할 수 있는 데다 시설 기준도 타석당 거리가 2.5m 이상이고 안전망 등 부대시설만 갖추면 되기 때문. 대구시내 한 구청 관계자는 "실제 사행성 행위가 벌어지는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일일이 감시하기 어려운 데다 건축물 용도만 맞다면 영업을 막을 수 없어 사행성 도박으로 간주, 단속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스크린골프장= 실내에 대형스크린과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갖춰 실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실내 골프장. 공을 치면 볼이 날아가는 것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진짜 코스에서 라운딩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동반자와 게임도 할 수 있고 연습까지 겸할 수 있는 일종의 '대체골프'인 셈.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20여 개 국내 코스도 있고 페블비치 등 외국의 유명 코스 50여 곳이 가상현실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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