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백화점 본점에서 중앙도서관 방향으로 200여 미터쯤 떨어진 도로변 안쪽 낡은 건물 3층에 자리한 고전음악감상실 '하이마트'. 이 음악감상실이 13일로 개관 50주년을 맞는다. 1957년 문을 연 뒤 오로지 대구 도심을 지켜온 '하이마트'(Heimat).
독일어로 '고향'을 의미하는 이름 그대로 '하이마트'는 반세기 동안 대구시민들에게 정서의 자양분이자 클래식 음악의 고향이었다. 감상실에 들어서면 2평 남짓한 전축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LP와 CD 그리고 연주 실황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수천 개가 시선을 끈다.
누렇게 빛바랜 LP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하이마트'가 걸어온 반세기 역사에는 3대에 걸쳐 음악과 맺은 아름다운 인연이 간직돼 있다. 처음 문을 열었던 아버지가 작고하자 딸 김순희 씨가 유언을 받들었고 조만간 아들 박수원 씨가 물려 받을 예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심 스카이라인 속에서 세월이 머문 이곳의 개관 50주년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하이마트' 연 사람은 지난 1969년 작고한 김수억 씨. 처음 자리 잡은 곳은 구 대구극장 맞은편 건물 2층이다. 서울에서 사업을 했던 그는 미군부대와 미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클래식음반을 사 모으던 음악애호가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트럭에 음반을 가득 싣고 대구로 피란을 왔다. 전쟁이 끝나자 수천 장의 음반을 가지고 천리길 서울로 돌아갈 일이 막막해 그냥 대구에 눌러앉아 음악감상실을 열었다.
전쟁으로 피폐한 시절, 문화에 굶주린 사람들이 하루 400여 명 넘게 찾아왔다. 하지만 1980년대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손님이 줄어들었다. 전축과 카세트테이프가 흔하게 보급되고 클래식보다 팝과 가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983년 새 상권이 조성된 현재 위치로 이사했지만 끊어진 발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이마트'는 365일 문을 열었다. 김순희(61) 씨는 "몇 해 전 명절 때 하루 쉬었다가 지인에게 야단 맞은 뒤로 아예 쉴 생각을 포기했다."한다. 그간 여름 해수욕 한 번 못가봤지만 문화지킴이로 살아왔다는 긍지 하나로 지냈다.
'하이마트'에 10년 단골은 명함도 못 내민다. 음악감상모임 '유터피'와 '에스텔라'는 40여 년째 하이마트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김현철 계명대 의과대학장은 의예과 신입생이던 1967년 발을 들인 후 지금까지 단골이다.
김 학장은 지난 2003년 '대구악우회'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감상회도 갖고 있다.
오는 13일 오후 6시 30분 열리는 50주년 기념 음악감상회에는 하이마트와 동고동락한 동호회원들이 함께한다. '비바체' '에스텔라' '뮤즈' '소향회' '대구악우회'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벨라 바르톡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바흐-부조니의 '샤콘트 d단조' 등을 감상한다. 이와 함께 김 씨의 며느리 이경은(피아노) 씨가 이창호(바순) 씨와 호흡을 맞춰 토마스 던힐의 '바순과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서정적 모음곡'을 축하 연주하고, 유터피 초대 회장을 지낸 장득상 씨가 '하이마트 음악감상실 50년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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