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고, 뚫고, 깎고…'
팔공산에 한동안 잠잠했던 개발 바람이 또다시 불고 있다. 지자체들이 대형 개발계획을 내놓고 있는데다 각종 규제 완화로 건물 신축이 가능해졌기 때문. 이로 인해 가뜩이나 이리저리 난도질당해온 '명산(名山)'이 개발 바람 앞에 다시 한번 크게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우후죽순 개발계획
20일 오후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마치 도심 유흥가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말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다. 기성리와 인근 남원리 일대에만 식당 144개, 여관 36개가 있다. 팔공산 개발붐이 불던 90년대 중후반에 들어선 것들이다. 지금도 신축공사를 하는 식당이 4, 5개나 됐다.
한 식당 주인은 "장사가 제대로 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부동산 업자만 배불려 놓고 나중에 이 많은 건물이 어떻게 처리될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기성리에서 한티재 너머 군위군 부계면 남산동까지 '무질서한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팔공산 북서편이 망가진 지 오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각 지자체는 '개발'이란 구호 아래 대규모 프로젝트를 또다시 쏟아내고 있다. 개발 계획을 살펴보면 현란하기 짝이 없다. 대구시와 경북도, 영천시, 군위군 등은 ▷동구 산림문화 리조트 조성 ▷동명-부계 간 터널 3.6㎞ 공사 ▷영천 청통지구 종합레포츠타운 및 은해사 집단시설지구 조성 ▷군위군 위천 레저루트 등을 계획 중이다. 한 관계자는 "지자체의 목표는 개발을 통한 인구 유입과 세수 증대"라면서 "무리가 따르더라도 국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팔공산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구시는 한술 더 떠 동봉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정상~동봉~제왕봉 등산로 개발, 진입도로 및 주차장 조성 등을 검토 중이다. 시가 지난 20여 년간 지켜온 보전 정책을 포기하고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를 계기로 개발 쪽으로 옮겨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김범일 대구시장은 공산댐 상류지역 상수원보호구역(288만 평)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건축규제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점을 볼 때 환경정비구역으로 한 단계 낮춰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규제완화 의사를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종합 청사진 없이 마구잡이로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이 생태계 파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개발계획을 세우고 독자적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만 하더라도 1993년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팔공산 생태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경북지역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개발 이전에 팔공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생태조사가 필요하다. 팔공산은 앞산과는 달리 화강암 재질로 이뤄져 침식·풍화가 심한데도 등산로를 24시간 개방하고 추가 개방하려고만 한다."고 했다. 기본 지식도 없이 갖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뜻이다.
◆규제완화는 개발붐으로?
느슨해진 규제도 팔공산 훼손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는 지난 2월 628만 4천㎡(190만 평)에 달하는 공원보호구역을 해제했고 이 중 151만 800㎡(45만 평)는 자연녹지나 보전녹지로 변경, 2층 이하 건물 신축이 가능해졌다. 또 지난해 동구 구암마을(4만 6천738㎡) 일대의 그린벨트를 풀었고 4월에는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완화해 건물 신축이 가능해졌다. 다음달에는 동구 백안동 등 공산지역 16개 지역(31만 2천 평)이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규제가 완화된다.
지난 1년여 동안 대구지역 팔공산 일대에서 규제가 완화된 토지는 모두 222만 6천 평에 달한다. 연경동 일대 45만 평에 국민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포함하면 훼손 가능성이 높은 토지는 훨씬 더 늘어난다.
대구시 관계자는 "규제완화 지역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만큼 난개발 우려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발로 당장 이어지진 않겠지만 개발의 '전주곡'임에는 틀림없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일단 규제가 풀리면 임야나 논밭 등을 대지로 형질변경한 뒤 건축허가를 받는 식의 편법을 동원하면 건물신축이 가능하다."며 "칠곡군 동명면의 개발 과정에서 보듯 규제완화가 나중에 개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말했다.
팔공산 권역 지자체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개발가능지역과 보전지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정해용 대구시의원은 "종합적인 청사진을 만들어 규제완화 지역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개발지역에 대해서는 입지 타당성 여부를 잘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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