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스승의 날, 아름다운 동행

▲ 홍경민(구미오산초 교사)
▲ 홍경민(구미오산초 교사)

"선생님, 힘들어 죽겠어요."

"업어주시면 안 돼요? 쪼끔만 업어주세요. 네?"

통통한 몸집의 3학년 녀석이 따라오며 내내 엄살을 떤다. 날은 덥고, 가파른 산 길이 요즘 아이들에게 분명 힘들 것이다. 아이들만 힘든 게 아니라 선생님들도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땀과 숨참 뒤에 평소와 뭔가 다른 빛나는 느낌이 분명 있었다.

'사제동행 효자봉 오르기'

우리 학교는 이번 스승의 날을 두고 전 선생님들이 함께 많은 고심을 거듭한 결과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제대로 하자고 결정을 했다. 교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아침엔 운동장에서 기념식을 했고, 식이 끝난 후에는 학교 앞 등산로를 올라 금오산 효자봉으로 출발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전교생이 한 줄로 길게 오르는 산 길은 참으로 볼 만했다. 길라잡이로 교장선생님이 선두를 이끌고, 후미는 교감선생님이 밀어올리며 시작된 산행은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오가며 만나는 등산객들에게 녀석들은 어찌나 인사를 잘하는지 교실에서 보는 개구쟁이 모습과는 또 다른, 의젓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에는 대답조차 크게 하지 않던 수줍음 많은 한 아이가 슬그머니 뒤로 따라붙더니 불쑥 물통을 내민다. 선생님 드시란 뜻이다. 찌릿한 느낌이 가슴으로 치밀어 올랐다. 문득 앞을 보니 평소 앙숙인 두 녀석이 앞뒤로 오르고 있다. 앞서 가던 한 녀석이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물병을 뒤따라가던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주워 말없이 손에 들고 간다. 교실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두 녀석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 다투곤 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후한 마음을 보인다. 푸르른 녹음이 아이들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동행들 덕분일까?

퇴근시간 다 되어서는 1년에 한 번, 스승의 날이면 연락이 오는 몇몇 제자 중의 한 녀석이 어제는 출장 중이어서 못 찾아뵈었다며 와서는 빙긋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선생님하고 저하고 띠동갑인 거 아세요?'

그래. 이렇게 같이 늙어가는구나. 곧 아버지가 될 제자를 보며 긴 세월 지나도 어떻게 자라는지, 어떻게 어른이 되어 어떻게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잘 살고 있는지 연락의 끈이라도 되어주는 스승의 날이 있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승의 날이면 사회 일각의 따가운 시선과 학부모에게 가는 부담을 아예 없애고자 휴교를 하고, 교실에선 절대 꽃이나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통보를 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그런 스승의 날 말고, 진정 감사와 존경을 되새겨 보는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 이 땅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십 년 후 또 한 녀석이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선생님, 그날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참 즐거웠어요."

홍경민(구미오산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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