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22일)가 夏至(하지)다. 말 그대로 '여름이 이르렀다'. 옛사람들은 이날부터 小暑(소서)까지 보름간을 5일씩 3마디로 나눠 첫 5일 동안엔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두 번째 5일 동안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세 번째 5일간은 半夏(반하: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에 알줄기가 생긴다고 했다. 사슴뿔과 반하는 어찌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이른 매미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있다.
어느새 나무들은 짙푸른 청년의 모습이다. 봄꽃들이 그리도 다투듯 피던 시절과는 달리 여름 초입엔 되레 조용하다. 그럴 만도 하겠다. 지금은 나무의 푸르름이 한창 좋을 때라 웬만큼 예쁜 꽃도 미색이 가려질 판 아닌가. 더욱이 곧 시작될 장마철엔 제아무리 미스 유니버스 뺨칠 꽃인들 별 도리가 없다.
자연의 섭리란 게 참 오묘하다. 온 산하가 삭막한 이른 봄엔 화사한 꽃들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여름엔 온통 싱그러운 잎들의 천지가 되었다가 장마 뒤 어수선한 주변은 정열의 여름꽃들이 리모델링해 주고, 온 세상의 것들이 거두어지기 시작할 무렵엔 정겨운 가을꽃들이 시선을 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로의 장점을 드러내주면서 윈윈(win win)하는 식이랄까. 미물인 꽃과 나무들도 다 제나름의 사는 지혜가 있나보다.
유월 하순이지만 음력으론 아직 오월이다. 옛 중국인들이 '오월의 꽃'으로 불렀던 석류꽃이 피는 달, 그래서 '석류달'로 부르기도 했던 달이다. 그러고 보니 여름은 석류꽃과 함께 온다. 멀리서는 수수하나 가까이서 보면 무척이나 화려한 자태다. 그러면서도 高雅(고아)한 격조가 있다. 이런 경지를 두고 華而不奢(화이불사: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음)라 했던가.
대구 만촌동 조용한 주택가의 뉘집 담장 아래에 석류꽃이 선홍빛 돗자리인양 깔려 있다. 이즈음 떨어지는 건 거진 다 수꽃이라 한다. 암꽃들은 이미 열매를 보듬고 있는 터라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나. 아무리 겉모습이 비슷한들 열매가 없으면 결국 떨어져 땅바닥에 뒹굴다 사라진다는 걸 석류꽃에서 한수 배운다.
대선을 앞두고 너도 나도 "내가 바로 진정한 대통령감이로라"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과연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한 크고 아름다운 열매를 키워가는지, 아니면 곧 떨어지고 말 석류 수꽃 같은 운명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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