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TV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박신양은 '독종' 사채업자로 등장, 종횡무진 극을 이끌고 있다. 사채업은 악덕업자나 폭력배의 전유물일까? 본사 기획탐사팀이 대구지역 사채시장을 깊숙이 들여다 보니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최근 경기침체, 구직난 등으로 청년 실업자, 영세업자들이 사채업에 대거 뛰어들면서 보편적인 직업 중 하나가 됐다. '적은 돈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사채업자로 나서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로 인해 사채업소가 난립, 개·폐업이 잦고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그 부작용도 만만찮다. '아마추어' 업자의 패가망신 사례도 적지 않았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사채사무실
이모(31) 씨는 최근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후 주말마다 수원의 사채업자에게서 '돈 굴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직장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며 "갖고 있는 3천500만 원 정도로는 장사도 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사채업자로 나섰다."고 했다.
3년째 취업에 실패한 김모(30) 씨는 작년 말부터 고향 땅을 판 돈 4천만 원으로 사채업을 시작했다. 그는 사우나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50만~200만 원을 빌려주고 월 5부 이자를 받고 있다. 그는 "소액을 지인에게만 빌려줘 위험부담이 없다."며 "월 300만 원 정도 벌고 있는데 실업자 때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되는 대부업법이 시행(2002년 10월)된 이후 2003년 5월 750건이던 등록 사채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 올 5월 현재 1천981곳이나 등록됐다. 박용호 대구시 기업지원과 대부업 담당자는 "개폐업이 잦고 은밀한 대부업의 특성상, 등록하지 않은 불법 업소까지 포함하면 실제 업소 수는 몇 배나 될 것"이라고 했다. 무등록 사채업으로 경찰에 적발된 업소는 2005년 한 해 32건이었으나 2007년에는 4월 말까지 191건이나 됐다.
◇패가망신 많아
대구시 중구의 1층 가게. 중고 수리점이란 간판을 걸고 있지만 A씨(32)가 불법 운영하는 사채 사무실이다. 5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30대 초반 젊은이 5명이 손님을 기다리며 카드를 치고 있었다. 그는 "업계에서 돈을 신선하게 보관해야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며 금고로 사용하는 냉장고의 냉동실을 열어 보인 후 "요즘 이곳저곳 사채 사무실이 생기면서 돈이 말랐다."고 했다.
1998년 군복무 후 회사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 4천만 원으로 사채를 시작한 A씨. 처음엔 돈을 좀 만졌지만 얼마 전부터 원금을 회수하지 못해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고 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옛말입니다. 악덕 사채업자도 있겠지만 돈 떼먹으려 덤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는 "40대 여성이 돈을 갚지 않아 집으로 찾아갔더니 옷장 대용으로 여행용 가방을 쓰면서 도망갈 준비를 해놓았더라."고 전했다.
B씨(29)는 1년 전부터 사채에 손 댔다가 4억 원 가까운 빚을 졌다. 2년제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한 그는 친척, 친구들에게 빌린 돈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등으로 마련한 종자돈 1억 원으로 사채를 시작했다. 조금씩 돈을 벌자 씀씀이가 커졌고 몇 군데서 돈을 떼이면서 결국 빚더미에 올랐다. 그는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다 빌린 돈의 이자를 갚기 위해 다른 곳에서 사채까지 쓴 뒤 숨어다니고 있다.
멋모르고 사채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쪽박'을 차는 사례가 많다. 4년째 사채업을 하는 강모(35) 씨는 "언뜻 보기에 높은 이자 때문에 돈이 벌릴 것 같지만 한두 명에게서 돈을 떼이면 그날로 끝이다."며 "돈이 없다고 발뺌하면 받을 방법도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사채 사무실을 열었다 채 1년도 안 돼 문을 닫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다. 2002년 10월부터 2003년 5월까지 20건에 불과하던 폐업신고 건수(직권취소 포함)가 2006년 6월부터 올 5월 말까지 한 해 동안 225건이나 됐다.
조갑제 계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채가 일정 부분 금융권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현재처럼 난립할 경우 업자나 채무자 모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 등록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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