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TV를 '제2의 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늘날은 TV에 인터넷을 더 보태야 하며, 이 두 매체의 영향력은 사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크다. 이들은 생각하는 능력과 판단력이 점차 쇠퇴하고 있는 일반 대중의 의식과 생활을 좌우한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고려하여 TV나 인터넷 없는 삶을 생각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이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다민족 부랑인들로 구성된 싱가포르가 수십 년 만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매스컴 때문이었다. 싱가포르는 장기간에 걸쳐 황금 시간대에 수준 높은 교양물을 집중적으로 방영했다. 싱가포르는 매스컴이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노력하면 사회 전체가 바뀐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부패와 타락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인간성 회복'과 '건전한 놀이 문화'를 외치고 있다. 이것은 그냥 부르짖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학습에 의해 형성되고 다듬어진다. 이를 위한 일차적인 동기유발에 TV나 인터넷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날카로운 문명 비판론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는 '놀이하는 유희적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호모 루덴스'란 명저를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의 요소가 발견되며,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다. 사냥은 물론 정쟁조차도 놀이의 성격이 있다. 그는 문명이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겨나 놀이를 떠나는 법이 전혀 없다고 말하며, 인간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에 가까이 올수록 문화가 놀이의 성격을 벗어나고 있다고 개탄한다. 일과 놀이가 과거처럼 자연스럽게 결합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의 불행이라는 것이다.
젊은날의 독서란 저수지에 물을 가두는 것과 같다. 장마철에 이 골 저 골에서 많은 물이 흘러들어와야 한다. 흙탕물이라도 상관없다. 세월과 더불어 정화되기 때문이다. 여름날에 가득 채워 놓으면, 가을이 되면 스스로 깨끗해져서 맑은 물이 된다. 이때 수로를 따라 나오는 물은 여름날의 그 흙탕물이 아니다. 그 호수만이 가지는 독특한 향기와 깊이를 가지는 물이 된다. 젊은날 많은 책들을 읽어두면 그 내용들이 세월이 흐르면 독특한 나의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때 나의 입이나 글을 통해 표현되는 내용은 나만의 개성과 깊이를 간직한다. 바뀐 입시제도에 능동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하게 독서를 하는 것이다. 수준 높은 TV 프로그램은 창의적인 놀이 문화와 사고력 배양을 위한 독서를 적극적으로 장려할 수 있다. 부모는 무조건 TV를 못 보게 하고, 인터넷을 못 하게 하지 말고 자녀들이 문명의 이기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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