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이 있는 길)겨울 내소사-장하빈의 시 '내소사 단청'

'세월아 봄아 가지를 마라 아까운 청춘 다 늙는다.'는 배치기 노래를 흥얼거리며 칠산바다를 가까이 두고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내소사 표지가 고즈넉하게 맞는다. 내소사 주차장에서 약 3분 올라가면 멋진 자태의 일주문을 만날 수 있다. 일주문은 후대의 것이나 후면의 자연과 자연스럽게 일치되어 단아한 자태를 뽐낸다.

내소사는 유구한 역사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사찰의 일주문으로부터 천왕문에 이르는 약 600m의 전나무 숲길이 그것이다. 변산의 절경과 어우러져 마치 터널과 같이 좌우를 덮은 전나무들의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자태와 은은한 향기는 공해에 찌든 우리의 후각과 뇌를 정제시키는 것만 같았다. 무릉도원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나무 숲은 은은한 안개와 더불어 현세에서 벗어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형상화시킨 것 같았다.

천왕문까지 이르는 길목은 전나무 숲과는 달리 잘 닦여진 정원길이다. 양 옆으로 단풍나무들이 아기자기하게 서있고 바로 정면에 천왕문과 그 옆으로 낮은 담이 둘러쳐져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정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높지 않은 석축단이 대웅전까지 펼쳐져 있고 매표소 일주문 앞에 있던 할머니 당산과 쌍을 이루는 할아버지 당산목이 큼직하게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석축단이 높았다면 아마도 답답해보였을 것이다. 석축단인 얕아 사찰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하고 마음이 넉넉해짐을 느낀다.

내소사 대웅전은 못 하나 쓰지 않고 깎은 나무를 모두 끼워 맞춰 지은 건물로 그 노력과 공이 대단한 건물인데 거기에 얽힌 전설이 매우 신비롭다. 대웅전을 지키고 있던 보살님이 찬찬히 설명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청민선사가 이 절을 중건할 때 목수를 불렀는데 그 목수가 3년 동안을 말 한마디 않고 건물에 들어갈 나무만 깎고 있었나 보다. 법당 보살님은 이를 목수가 묵언 수양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말 한마디 안하고 나무만 깎고 있으니 사미승이 장난기가 발동했던 모양이다. 목수가 깎고 있는 나무토막 중에 하나를 몰래 숨겨놓고 모른 체했다. 마침내 모든 나무를 다 깎았다고 생각한 목수는 드디어 나무를 헤아렸고 부족한 것을 안 목수는 자신의 수양이 아직 부족한 것으로 생각해 청민 선사에게 절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단다. 그러자 선사가 그 부족한 한 토막은 이 절과 인연이 안 되는 것 같으니 그만 생각을 바꿔 절을 지어달라고 사정했다. 목수가 할 수 없어 남은 토막만 가지고 절을 지어 지금도 법당 안 오른쪽 윗부분 내 5출목의 한 부분이 비어 있다. 그 옆에도 빈 부분이 있는데 단청의 유무를 가지고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원래 지을 때부터 없던 곳은 단청이 칠해져 있고 후에 빠진 부분은 단청도 빠져 있다.

절을 지었으니 단청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느 날 한 화공이 찾아와 단청을 해주겠다고 선사에게 이야기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100일 동안 누구도 건물 안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 선사와 목수는 교대로 그 건물 앞에서 누구도 얼씬 못하게 지켰다. 99일이 지나도록 인기척도 없고 먹을 것도 안 들어가니 사미승이 얼마나 궁금했겠는가. 사미승은 주지 스님이 부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기어이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하얀색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갯짓에서는 화려한 물감을 만들어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이에 너무 놀란 사미승이 자세히 보고자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삐걱하는 소리가 나고 놀란 새는 그만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단청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대웅전 안에 좌우 한 쌍으로 그려져야 할 그림이 좌측 창방 위는 바탕면만 그려져 있고 내용은 그려져 있지 않다. 그 새를 사찰에서는 관음조라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에 새 울음소리가 난다. 그래서 이런 시가 나왔다.

'전나무 숲길 지나/ 벚나무 화안한 마당 지나/ 능가산 내소사 들어서면/ 저 높은 곳, 둥지 튼 비탈진 삶도/ 따사로운 봄 언덕에 기대었습니다// 대웅보전 들러 합장하는 순간/ 수수꽃다리 훔쳐보던 사랑/ 부처님한테 그만 들키고 말아/ 붓을 물고 관음벽화 속으로 날아갔습니다/ 요사채 뒷마당 우물가 돌아가 보면/ 붉은 깃털 하나 빠져 울고 있었습니다.'(장하빈, '내소사 단청' 전문)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 6월 26일자 '모항에서②'에 실린 이미지는 'blog.naver.com/yeouwolfssi'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혀 드립니다.

☞ 장하빈의 시집 '비, 혹은 얼룩말'

하빈은 꼬장꼬장하다. 야윈 몸 이상으로 영혼도 꼬장꼬장하다. 10년이 넘는 그와의 인연. 그렇게 꼬장꼬장함으로 만난 하빈을 진정 이해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빈과 동행한 수많은 상처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하빈의 상처는 의외로 넓고 깊다. 아마도 그것이 하빈이 지닌 꼬장꼬장함을 만들어낸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하빈은 시인이다. 그에게는 시가 생명이다. 난 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집이 드디어 나왔다. 예쁘다. '비, 혹은 얼룩말'(만인사, 2004). 반가움에 목이 메고 코끝이 아려왔다. 허락 없이 이런 글을 써서 죄송하다. 나도 모르게 목이 메고 코끝이 아려서 더욱 죄송하다.(하빈의 시집을 만나고 하빈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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