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대입 '기회균등할당제'

대학 입학 때 저소득층과 다문화가정 자녀 등이 정원 외 특별전형으로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균등할당제'가 2009학년도부터 도입될 전망이다. 현재 3.9%인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특별전형을 11%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어림잡아도 6만4천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엄청난 규모다. 선발 기준은 수능이나 학생부 성적이 아니라 잠재능력과 소질 등이며 이들에게는 장학금과 함께 학력 격차를 보완할 수 있는 별도의 교육 기회도 주어진다.

이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의 추진 방침에 사립대들이 반기를 들고 나오면서 교육계에 오래 묵은 수월성과 평등성 대립으로 발전될 조짐도 보인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회균등할당제의 현실적 문제에서부터 수월성-평등성 대립에 이르기까지 교육 전반에 걸친 우리 사회의 대립 구조를 제대로 짚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 개천에서 용 나는 길 만들어야

기회균등할당제를 추진하는 교육부의 입장은 저소득층에 대한 고등교육 기회를 확대해 대학이 계층 이동의 통로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는 길을 복구하겠다는 뜻이다.

'이번에 새로이 도입되는 기회균등할당제는 그동안의 노력에서 더 나아가 소외계층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고등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난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개천에서 용 나는 경로를 복구하기 위한 것이다.'(교육부 발표 자료) 교육부는 이와 함께 입학한 학생들에게 기초학습능력을 보완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장학금 지급과 등록금 면제, 무이자 학자금 대출 등의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일단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 자체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학력을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도 대학 가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야 희망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기회균등 할당제는 갈수록 고착화하는 계층의 대물림을 어느 정도 끊을 수 있는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성장과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런 점에서 지역균형은 물론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으로 정원외 특별 전형의 문호를 넓히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신문 사설)

기회균등이 오히려 상대적 차별을 가져 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정원 외 모집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한다.

'일부에서 능력 있는 일반 학생의 기회를 상대적으로 깎아먹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정원 외 모집은 고등교육법 취지상 특수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쟁이나 진학이 어려운 경우를 대상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시하는 것이므로 정원 외 모집 인원의 총원이 동일하다면 그 내용을 조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신문 사설)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반박은 적지 않다. '대입 공정성의 잣대가 성적순 하나만 될 수는 없으며, 이는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소득 계층에 따라 전형기준을 별도로 마련해 저소득층을 선발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나 누가 더 많은 사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게 엄연한 우리의 현실에서 빈부격차를 감안하지 않은 100% 성적순 전형이야말로 비교육적이며 불공정하다고 볼 수도 있다.'(신문 사설)

▨ 취지만 앞세운 생색내기 졸속 정책

기회균등할당제는 분명 저소득층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교육받을 기회를 보다 늘리겠지만 이에 따를 수 있는 여러 부작용들에 대한 방안도 면밀히 마련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교육부 계획은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정원 외 전형에 대한 판단 오류가 지적된다. '지금도 실업고 출신을 정원 외 3%까지 더 뽑을 수 있게 하지만 대학들이 실제 뽑는 인원은 2%가 안 된다.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선발을 꺼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그 숫자를 한꺼번에 2.8배로 늘리자고 하고 있다.'(신문 사설)

대학에 진학하기만 하면 성공에 가까워질 것이라며 이를 부추기는 교육부의 태도, 고등교육을 통해 계층 간 격차를 완화한다는 의도 역시 비정상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고등교육은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나 학문연구에 그 목표가 있다. 고등교육의 수월성은 우수한 인재 모집,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을 평등의 입장에서 운영하려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논리다. 더구나 교육을 통해서 빈부격차를 완화한다는 것은 정책의 목표와 수단이 어긋나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달성 불가능한 목표로 여겨진다. (신문 칼럼)

이번 방안이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생 수를 줄여온 정부의 정책과 반대된다는 딜레마도 비판 요소다. 정부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1천억 원대의 지원금을 대학에 줘 가며 5만 명 정도의 정원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이번 조치로 그만큼의 학생 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반면 지방대 위기는 더욱 심각해진다는 우려도 크다.

'우리 대학진학률은 82%로 세계최고 수준이다. 학력 인플레가 젊은이들 눈만 높여놓아 고학력 실업자가 쏟아진다. 그걸 개선한다고 교육부는 2004년에 국립대 정원은 1만 2천 명, 사립대는 8만3천 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 6만 4천 명을 더 뽑으라는 것이다. 많은 지방대가 정원을 못 채워 "지원만 하면 합격시키고 휴대전화도 준다."며 학생을 유치하는 실정이다. 그런 학교들이 정원 외 입학을 시켜준다고 해봐야 누가 가겠는가. 결국 수도권 몇몇 대학에만 몰려들 것이다. 지역균형발전 한다는 정권이 내놓는 정책이 다 이렇다.'(신문 사설)

할당제로 입학 학생의 실력을 평균치까지 끌어올리는 데 대학이 매달리다 보면 경쟁력 저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정책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비판한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길러야 한다. 교육에 경쟁원리를 도입하고 수월성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이유다. 개천에서 나오는 용은 쓸모도 별로 없다. 개천의 용일 뿐이다. 요즘 용은 큰 바다에서 외국의 인재들과 싸우면서 커야 제 몫을 한다. 개천을 떠나 대해로 나가면 용이 될 인재들마저 개천에 주저앉혀 이무기로 만들고 있는 게 요즘 한국 교육이다. 용을 본 적도 없는 이무기들이 용을 기르려는 데서 나오는 비극이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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