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安東

안동 사는 사람이 저승에 가서 退溪(퇴계) 선생을 만났다. 퇴계 선생은 바짝 말라 계셨다. 깜짝 놀라 선생께 물었다. '不遷位(불천위)로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를 지내주시는데 왜 그렇게 말라 계시니껴' 그러자 퇴계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고 말도 말게. 후손들이 나를 얼마나 뜯어먹는지…' 골마다 종가 종택 하나 끼고 있지 않은 곳이 없는, 안동을 위시한 경북 북부지역의 우스개다.

웬만한 집의 제사는 4대조까지를 모신다. 그러나 4대를 넘겨도 후손 대대로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바로 불천위다. 큰 공을 세우거나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 그 대상이다. 이런 불천위가 안동지역에는 50위다. 班村(반촌)으로 불리는 同姓(동성)마을도 도내에서 가장 많다. 종가 종택이 즐비하고 종손이 흔하디 흔한 안동은 누구도 부인 못할 양반동네다.

그렇다고 안동에는 양반만 사는 것은 아니다. 안동하면 바로 떠올려지는 하회탈춤(하회별신굿)은 그야말로 양반과 평민의 타협으로 이뤄낸 작품이다. 탈을 쓴 상놈은 마음껏 양반을 풍자하고 조롱한다. 班常(반상)의 적절한 타협이 오늘 우리에게 하회탈춤이라는 세계적 문화유산을 남겼다.

어제 안동에서는 '정신문화의 수도' 선포식이 열렸다. 정신문화에 관한한 나라안의 으뜸마을로서 미래의 새로운 가치를 앞장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천석꾼 만석꾼은 아예 없고 백석만 해도 부자소리를 듣고 연간 20회가 넘는 제사에 쇠고기 탕국 대신 콩나물갱을 쓰는 종가가 많을 만큼 가난한 안동이지만 문화 유산과 토대는 어디에도 밑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의 발로다.

이런 안동의 자부심은 최근 희한한 술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바이오 주'다. 술에 생명의 이름을 붙였지만 실은 안동의 전통주 안동소주에 맥주를 혼합한, 이른바 폭탄주다. 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말 대신 바이오란 이름을 붙였다. 시민들도 노란 양주와 달리 안동소주 폭탄주는 너그럽게 봐준다. '정신문화의 수도'나 바이오 주의 기획자는 김휘동 안동시장이다.

안동을 찾아오는 이에겐 빠짐없이 바이오 주를 권한다. 바이오 주를 마시러 일부러 안동을 찾아오는 사람도 적잖다. 조선조 목민관의 으뜸 수칙이 淸白(청백)이었다면 선출직 단체장의 우선 조건은 시민에게 꿈과 희망과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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