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의 단상] W의 두 분 어머니

"큰엄마 방에서 자는 것이 정말 싫었다." 모처럼 나눈 곡차의 향기가 강했는지 우직하고 뚝심 강한 W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눈 작은 것을 빼고는 보족한 것이 없는 W, 골 깊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헤칩니다. W는 큰어머니와 친어머니, 어머니가 두 분입니다. 자식 없는 집에 후처를 들이는 것이 보편적이던 시절, W의 친모는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온 것입니다. 일녀삼남, W는 그 중 셋째 아이입니다.

남녀상열지사는 양보가 없습니다. 네 아이를 낳은 후처와 소외된 본처의 갈등이 전쟁으로 발전합니다. 위력적인 본처와 배경 약한 후처사이의 전쟁은 쉽게 결말이 납니다. 결국 큰엄마의 횡포를 감당하지 못한 친모는 W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옵니다.

체면을 목숨보다 중시하던 옛 양반네가 W의 부친 입니다. 흩어져 사는 꼴이 남 보기 민망하다고 강제병합을 시도합니다. 어느 날 부친은 똥물 한통을 들고 친모와 아이들의 피난처를 찾았습니다. 구석구석에 똥물을 쏟아 부은 부친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한마디 합니다 "냄새 많이 나제? 고마 집에 들어가자!"

그대부터 W의 방황은 절정에 이릅니다. 매일 창살 없는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합니다. 형제 중 유독 반발심이 강했던 W는 좌충우돌합니다. 하늘과 별과 바람과 모기, W는 무수한 나날을 언덕배기나 개울가에서 보냅니다. 깜박 잠이 들어 온 동네 사람들이 찾아 나선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심해지는 구박과 서러움이 어린 가슴에 멍울로 맺힙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울분이 폭발할 때쯤 W는 청도면 이서골짜기를 탈출합니다.

세월이 W를 성공한 사업가로 만듭니다. 서울 명문대학과 유수기업, 그리고 그 인고의 세월이 W를 강하게 합니다.

잔속에 넋두리를 담는 것은 성공한 자의 특권입니다. W의 작은 단추 구멍 눈에 물기가 어립니다. 크게 한잔 들이킨 W, "우리 형 정말 대단하다" 한살터울의 형을 형이라 부른 것은 처음입니다. 며칠 전 큰엄마를 찾은 W, 호랑이 같던 옛날 큰엄마대신 늙고 초라한 노파를 봅니다. 큰엄마를 친엄마 이상으로 챙기던 형의 마음을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는 W는 이제야 섬김을 압니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있는데 큰엄마는 아무 것도 없다, 불쌍한 노인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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