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에 개봉한 '아이스케키'란 영화가 있었다. 코쟁이들이 요강단지 덮어쓰고 달나라 가던 1969년 전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밀수 화장품 장사를 하는 엄마와 단 둘이 살던 우리 또래 영래. 영래는 서울에 산다는 아버지 소식을 듣고 아이스케키를 팔아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 몰래바이트를 한다. 영화는 아이스케키라는 매개를 통해 우릴 아이스케키통 같은 시원한 추억 속으로 밀어 넣는다. 독자님들은 언제 시간 나시면 인터넷이나 비디오가게를 찾아보시라. 온 가족이 아이스케키 하나씩 물고 보는 영화 맛도 괜찮으리라.
아이스케키는 농촌 출신이나 도회지 출신 구분 없이 누구나 한번쯤 겪었던 5,60년대 추억의 부산물이다. 물론 도회지에선 늘 보던 풍경인 반면, 농촌은 읍내 장터에나 가야 봄직한 그야말로 희귀성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이스케키 하나에 목숨 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엄마 따라 읍내 장터를 나가면 시끌벅적한 소리에 정신없어 하던 때 눈에 가장 띄던 아이스케키 장수. "아이스~~케키아~, 시원한 얼음과자가 왔수아~~ 아이스~~케키아~" 읍내엔 보통 대여섯 명의 아이스케키 장수들이 있었다. 우리 또래에서부터 형님뻘, 아저씨뻘 등 연령대가 골 고루였다. 마음씨 좋은 형님을 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공짜 아이스케키도 얻어걸릴 때가 있었다.
"묵고 싶나?"
그걸 말이라고 하는지, 히죽거리며 얄미워 죽는 소릴 했다.
"예, 예, 묵고 싶어요." 대답을 크게 하면 공짜 아이스크림 하나 생길까 싶어 아이들의 목소리는 악다구니에 가까웠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물어도 그렇게 크게 대답하진 않았다.
"그라마~" 그 사이 아이들의 침 넘어가는 음향 소리가 이어지고….
"너그들 집에 돈 될 거 뭐 없나?"
"예? 그기 뭔데요?"
"응~ 머라칼까, 쌀이든가 보쌀(보리쌀)이든가..." 아이들을 꼬드기는 폼이 아주 능수능란해 보였다. 말소리가 아주 나긋나긋하고 말끝머리가 감칠맛이 도는 그런 말투였다.
형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냅다 뛰어가는 애들은 그나마 읍내 사는 부러운 자식들이고 말뚝처럼 땅에 박힌 아이들은 뛰어갈래도 갈 곳 없는 먼 거리의 산골 촌놈들이었다.
그 새 아이스케키를 산 아이들의 날름거리는 혓바닥을 몇 번이나 봤을까 싶은 시간이 지나자, 조금 전 뛰어 갔던 아이들이 숨을 차 던지며 쫓아왔다. 바가지에 쌀, 보리쌀, 참깨, 옥수수 할 거 없이 한 됫박씩 들고 온 것이다. 쌀 가져 온 애는 아이스케키 세 개, 나머지 잡곡류들은 두 개씩 받아들고 입이 찢어지고들 있었다.
언제 봤냐는 듯이 아이스케끼를 흔들고 약 올리며 뛰어 가는 아이들. 한 입이라도 줄 것만 같은데 야속하기만 한 읍내 녀석들이 아직까지 미워 보이는 건 왜일까?
아이스케키는 한국전쟁나기 전, 1950년 즈음 세상에 선을 보이고 1960년대 후반까지 가내수공업 형식으로 제작, 판매되었다. 달콤새콤한 아이스케키 하나를 먹어보는 것은 당시 아이들의 원대한(?) 꿈이었다. 팥 안든 아이스케키는 5원, 팥 든 아이스케키는 10원.
토요일이면 읍내 나가서 아이스케키 장사를 했다는 민수의 말에 의하자면, 아이스케키 판매 수당은 1원이었다고 했다. 눈깔사탕 하나가 1원이었으니까, 한 개 팔면 눈깔사탕 하나씩 떨어지던 셈이었다.
그러나 아이스케키 장수들의 시대는 70년대가 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1960년 초반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하드인 삼×하드가 크게 히트 치면서 구멍가게에서 팔기 시작한 하드덕분에 도붓장수처럼 떠돌며 팔던 아이스케키는 점점 사라지고 70년대엔 다양한 아이스크림이 대량 생산, 판매되기 시작했다. 요즘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스케키를 먹어보지만 그다지 맛이 없는 건, 간절하게 원할 때만이 더 높은 가치가 주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름에 아이스케키 체험할 만한 농촌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집 냉장고에서 주스를 부어 즉석으로 아이스케키를 만들어 '아이스케키' 영화 한 편 보면서 옛 추억을 날름날름 핥아먹는 것으로 체험을 대신하면 어떨까?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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