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마다 대형 마트, 할인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공룡 유통업체 때문에 재래식 시장이 다 죽어간다고 아우성을 쳐도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마트와 할인점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24시간 문을 열어놓는 마트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농산품과 식료품, 공산품이 진열대마다 가득하다. 도시민들에게는 언듯 풍요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계산대에 올려진 물건을 체크하는 바코드의 삑삑 하는 소리는 삭막하기만 하다. 재래시장에서 보는 정(情)을 이곳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시골에는 요즘도 닷새마다 장이 선다. 지방마다 장이 서는 날은 다르지만 장날만 되면 시골 사람들은 분주해진다. 시골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고달픈 삶의 넋두리를 늘어놓는 수다터가 되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정보의 장이 되기도 한다. 약초 몇 뿌리, 참깨 몇 되를 소쿠리에 이고 나온 시골 아주머니들은 아침 나절부터 장을 여느라 부산하다.
이번에 9쇄를 발간한 '시골장터 이야기(정영신 글/진선아이 펴냄)'를 서점에서 골라 읽었다. 2002년에 1쇄를 발간했다고 하니 책의 인기가 실감 난다. 각종 단체 추천도서로, 글짓기 대회 과제 도서로 자주 등장한다고 소개돼 있다. 사진 작가로 일하고 있는 작가가 17년 동안 시골장터를 찾아 다니며 보았던 정겨운 풍경들을 글로 옮겨 놓은 책이다.
'할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빗자루는 세상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철수의 방을 청소해 주고 할머니 방도 청소합니다. 사람들 왕래도 없는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빗자루를 만드십니다. 전기 청소기만 보다가 장터 안에서 빗자루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사는 사람이 없는데도 쉬지 않고 빗자루를 만드는 할아버지가 예술가처럼 보입니다.'
뻥튀기 아저씨, 사주쟁이 할아버지, 쟁기 만드는 아저씨, 국밥집 할머니, 만물상 할아버지, 가마솥 파는 아주머니, 대장간 아저씨 등 이름만 들어도 푸근한 정경이 펼쳐진다.
사실 장터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다. 장날은 인근 마을 사람들의 축제날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장터에 나가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과 어울려 막걸리 한 사발을 기울였다. 또한 장날에는 그 지방 고유의 특산물 외에 떡장수, 술장수, 엿장수 등 먹을거리를 파는 장사꾼들이 많이 나왔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재래식 5일 장터는 400여 곳으로 추산된다. 그중 경북 예천장, 충북 진천장, 전남 강진장, 전북 순창장 등을 비롯한 50여 곳의 장터는 비교적 재래식 장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상적인 것은 장터 사진을 펜화로 옮겨 놓은 삽화다. 장터의 순박함과 생동감을 사진보다 더 잘 그려냈다. 어른보다 바쁜 요즘 아이들에게는 장터의 훈훈함이 책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언젠간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이 책에 나오는 장터들을 찾아다며 직접 보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겠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생각해보기
▶장터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사료에 의하면 490년(신라 소지왕)에 처음 개설된 경사시를 장터의 효시로 보고 있지만, 조선 시대에 이르러 경시(京市)와 향시(鄕市)로 구분이 되면서 형태를 갖춘 본격적인 장터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 순조 때는 경상도 276개, 전라도 214개, 평안도 134개 등의 향시가 있었다고 한다. 장터는 어떤 사회적인 필요성 때문에 번성하게 됐으며, 근대로 넘어오면서 왜 쇠퇴하게 됐을까.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차이점은 뭘까
재래시장에서는 흥정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 반면 대형마트에서는 한 개의 물건에서 작은 이익을 보는 대신 엄청난 판매량으로 수익을 올린다. 실제로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에서 같은 물건을 팔아도 가격 차이가 크게 나곤 한다. 이외에 나타나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에서 대형마트로 몰리는 동기는 무엇일까. 또 대형마트의 증가가 재래시장의 위축을 가져오는 이유와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에 대해 생각해보자.
▶새로운 시장의 형태에 대해 알아보자
최근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경매사이트나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매일 수십만 건의 거래가 성사된다. 온라인 시장이 확산되면서 온라인에 흩어져 있는 동일한 제품의 가격 정보를 안내해 주는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온라인 장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기존의 시장형태에 비해 가진 이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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