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영험 있는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쉽사리 사람의 형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었다. 곰은 스무 하루 동안 기(忌)를 하여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기를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혼인할 자리가 없었으므로 매양 신단수 아래서 어린애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화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 어쩌구 하면서 시작되는 전래동화의 서두처럼, 우리 민족의 태동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이야기가 신화든 설화든 혹은 상징이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이 우리 민족의식의 기원과 민속적 사료로서 더없이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는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다. 삼국시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고조선의 건국신화에서부터 삼국시대 이전까지의 문헌적 자취도 보충하고 있어서 삼국의 생성 배경까지 뚜렷이 밝혀주고 있다. 가 전통적인 편찬 절차나 편집 양식에 따라 집필된 제도적 산물이라면, 이 책은 그것에 구애됨이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으로 쓴 '문학'에 가까운 글이다.
그래서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 '허탄스러운' 이야기도 수두룩하다. 알이나 궤짝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선대임금의 음덕으로 '댓잎사귀들'이 군사가 되어 적군을 물리친다. 혜성이 사라지고 적병이 물러가고 가뭄에는 비를 오게 하는 피리가 나오는가 하면, 사람이 귀신을 부려 하루만에 큰 다리를 놓기도 한다. 신라시대 사람들이 불렀다는 순우리말 노래인 향가도 14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얼마나 절세미인이었으면 수로부인은 깊은 산이나 큰물을 지날 적마다 귀신이나 영물에게 붙들려 갔을까. 그 심량이 얼마나 컸으면 처용은 자기 아내를 탐하는 귀신을 요절내기는커녕 덩실덩실 춤이나 추고 노래를 불렀을까.
저자가 경주 출생이고 또 승려 출신이라 신라 중심 그리고 불교 중심의 유사라는 평을 듣기는 하지만 그 옛적 사람들의 사상과 생활의 단면들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전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만약 이 책이 없었더라면 역사, 지리, 문학, 미술, 언어, 고고, 민족, 사상, 종교 등 우리의 정신문화는 얼마나 빈약했을 것인가. 이 책은 서구사상에 물든 지금의 우리 이전의 '우리모습'을 상상케 해준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오래된 습성과 문화와 언어가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들도 그래서 정겹다.
하지만 '전설'은 아니다. 책에 나온 지명과 흔적들이 이 땅 곳곳에 실제로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찾아보면 폐사지의 부서진 돌조각 하나에서도 돌올한 역사의 양감이 만져진다. 천 년 전과 지금은 무엇이 다른 걸까. 하늘에는 해와 달이 변함 없이 제 궤도를 돌고, 땅에서는 사람들이 쉼 없이 태어나서 죽고 또 태어난다. 잠과 생시가 끊어진 것 같으면서도 늘 이어져 있듯 세월 또한 단절인가 하면 연속이다. 그러니 '조신의 꿈처럼' 우리의 생도 어쩌면 잠시잠깐의 꿈이 아닐까.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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