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크스의 긍정적 측면
골프 용어 중에 '프리샷 루틴'(free shot routine)이라는 말이 있다. 공을 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정형화한 행동을 뜻한다. 프로 선수들조차 골프채를 들고 공 앞에 서면 불안해진다. 이런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바로 '프리샷 루틴'이다. 공을 치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모자를 만진다거나 옷소매를 걷어올린다거나 바지춤을 끌어올린 뒤 헛스윙을 몇 번 휘둘러보는 행동들이다. 한 가지 행동만 이뤄질 수도 있고, 이런 행동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면 골퍼들은 공을 치지 전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된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온갖 쓸데없어 보이는 일련의 동작들을 수고스럽게 마무리한 뒤에야 본 동작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징크스는 운과 직결돼 있다. 불운에 대한 회피의 수단으로 징크스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징크스의 효용성과 근거를 따져보고,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마음을 다잡지만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징크스다. 적절한 통제만 가능하다면 징크스에서 굳이 벗어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징크스는 삶의 비타민처럼 가끔 행운을 가져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징크스는 일이 마음먹은대로 안될 때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자신이 정한 것이든, 남이 정해놓은 것이든 징크스만 지킨다면 자신에게는 행운이 따라올 것이고, 아울러 원하는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다는 믿음과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징크스는 일종의 예언적 경고를 해준다. 가령 아침에 그릇을 깨뜨렸다거나 출근길 매번 신호에 걸린다거나 우연찮게 들여다본 '오늘의 운세'에서 조심하라는 경고를 접하면 평소보다 훨씬 신중한 행동을 하도록 스스로 통제하게 된다.
◇ 징크스의 부정적 측면
하지만 대부분 징크스는 긍정보다는 부정적 의미에서 우리 삶을 통제한다. 사실상 징크스란 하나의 미신으로 아무런 설득력도 없고 실제 결과와 아무런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마음가짐을 갖더라도 한두 번 징크스를 경험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징크스에 집착하게 된다. 증권브로커 장모(43) 씨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장세를 읽어내야 하는 브로커들로서는 금기시하는 것들이 많다."며 "특히 출근길에 아내가 사소한 일로 바가지를 긁고나면 하루 종일 자신이 관리하는 종목이 폭락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징크스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정신적 강박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멜빈 유달(잭 니콜슨 분)은 길을 걸을 땐 보도블럭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거리며, 식당에서는 항상 같은 테이블에 앉아 직접 가져온 플래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불안하고 무엇인가 잘못 될 것 같은 심리가 이런 행동을 낳는다. 어린이들이 신발의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한번도 틀리지 않고 신발을 맞게 신는다면 자폐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폐증 어린이들의 경우(물론 징크스와는 관계없지만), 일종의 강박상태에 사로잡혀 철저히 양쪽을 구분하는 것이다.
아울러 징크스에 집착하면 정작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인 분석이나 판단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의 기준만으로 결론짓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게다가 부정적인 징크스를 경험하고 나면 자신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직장인 안모(38) 씨는 "아침에 스포츠신문에 보면 꼭 오늘의 운세가 있는데, 안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며 "차라리 몰랐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텐데 괜히 이래저래 조심하라는 글을 보고나면 하루 종일 찜찜하고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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