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우리 이모는 4학년

'나쁜 아이' 성장통 겪는 단편동화 10편

요즘 생활동화들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다면 '나쁜 주인공'이 곧잘 등장한다는 점이다. 나쁜 주인공은 감정이입이 쉽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인기 많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주인공이라면 왠지 재미가 없다. 나쁜 주인공은 철없고 자기만 알고 투정도 부리지만, 선한 주인공을 통해 기꺼이 자신을 반성한다. 어찌보면 나쁜 주인공이야말로 독자에게는 훌륭한 주인공이다.

'우리 이모는 4학년(정란희 글/산하 펴냄)'에는 10편의 단편동화가 실려있다. 표제작 '우리 이모는 4학년'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수록작이다. 책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아이들의 나쁜 짓을 커가는 동안 겪는 성장통으로 자연스럽게 바라본다.

초등학교 1학년 문한이에게는 네 살 많은 이모가 있다. 8남매의 막내라서 맏딸인 어머니와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초등학생 이모는 다정한 누나다. 이런 문한이에게는 못된 버릇이 있다. 풍선껌을 사기 위해 어머니의 닭집 가게 금고에서 자주 동전을 빼 쓰는 일이다.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이모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 배웅하러 나온 조카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이제까지 네가 가져간 돈 내가 다 채워놓았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그러지 마. 알았지?" 문한이는 고자질 대신 네 뼘 높이에서 지켜봐준 이모의 손을 꼬옥 잡는다.

'엄마 신발 신고 뛰기' 편의 선영이는 같은 반 진희가 질투의 대상이다. 얼굴도 내가 더 예쁘고 옷도 내가 더 잘 입는데 진희는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공부도 잘한다. 반장 선거에서도 선영이를 이긴다. 어느날 운동회에서 엄마 신발 신고 뛰기 종목에 출전한 진희는 커다란 아빠 신발을 신고도 꿋꿋하게 잘만 달린다. 샘이 난 선영이는 진희의 신발을 뒤에서 일부러 밟아 넘어뜨리고 1등이 된다. 하지만 진희가 공사 현장 인부인 아빠, 어린 남동생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은 선영이는 죄책감에 빠진다. 진희는 오히려 아빠 신발이 커서 넘어졌을 뿐이라고 다독이고, 선영이는 정말 미안하다고 속삭인다.

'땅바닥에 그린 운동화' 편의 민수는 새운동화를 사주지 않는 엄마가 밉다. 자신보다 공부 못하는 영철이는 비싼 운동화를 샀다고 자랑하는데….어느 날 민수는 힘들게 손수레를 밀며 가는 엄마를 먼발치에서 보지만 일부러 돕지 않는다. 그때 영철 엄마와 마주쳐 얘기를 나누는 엄마. 영철 엄마의 예쁜 구두와 엄마의 낡은 운동화가 한눈에 들어오자 눈물이 핑 돈다. 민수는 엄마의 손수레를 밀어드리기 위해 동산을 달려 내려온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다그치기 전에 아이들 스스로 반성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생각해보기

▶'우리 이모는 4학년'에 등장하는 막내 이모는 4살 아래 조카의 잘못을 보고도 부모님께 이르거나 꾸짖지 않았다. 대신 조카가 훔친 돈주머니에 몰래 돈을 채워넣었다. 이모의 행동은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만약 내가 이런 경우에 처한다면 이모와 같은 행동을 했을까.

▶'엄마 신발 신고 뛰기'에 나오는 진희는 일부러 자신의 발을 걸고 달리기에서 1등을 빼앗은 친구 선영이에게 화를 내는 대신 용서해준다. 내가 진희라면 선영이에게 어떻게 했을까. 또 엄마 신발 신고 뛰기 종목에 아빠 신발을 신고 출전한 진희가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건 왜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잘못된 행동에 대해 즉시 꾸짖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스스로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까. 실제 내 경험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는데 더 효과적이라면 그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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