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의사들의 VIP 신드롬

나는 전화 받는 일이 무엇보다도 싫다. 특히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나 밤 늦게 걸려 오는 전화는 더욱 그렇다. 이는 내가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로 접어든 이후에 생긴 버릇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밤 늦은 시간이나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는 십중팔구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내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 중에 어느 분이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당직 의사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나 주위의 가까운 지인들 중 누군가가 몸이 몹시 불편해서 나를 급하게 찾는 전화이다.

의사로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전화이지만, 솔직히 반갑지 않은 전화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전화들 중에서 가끔은 주위의 잘 아는 사람이나 친척 또는 동료 선후배 의사들로부터 걸려오는 것도 있다. 내가 담당해서 치료하고 있는 환자를 잘 봐 달라거나, 이러저러한 환자를 보낼 터이니 잘 좀 부탁한다는 전화다.

더군다나 의사들의 직계 가족이나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에 대한 당부 전화가 많다. 때로는 환자의 직종이 같은 의료인일 경우 부담이 백배다. 진단에서부터 치료까지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어느 환자인들 가벼이 하거나 신중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것과는 또 다른 무엇이 압박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혹시나 내가 하는 말을 오해하지는 않을까. 혹여 간호사나 기타의 다른 의료진들이 뜻하지 않은 실수나 하지 않을까. 혹여 진단이 잘못되거나 치료과정에 합병증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등등.

이런 경우 대부분이 잘해봐야 본전이다. 잘 나아서 퇴원하면 당연한 것이고, 만에 하나라도 합병증이 생기거나 예상치 않은 치료결과가 나오면 그때는 정말 난감해진다. 모든 의사는 명의가 되고 싶어한다. 동료의사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참 묘하다. 이런 환자에게는 꼭 생각지도 않은 합병증이 생기거나 전혀 엉뚱한 치료 결과가 나와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실수도 하게 된다.

이게 바로 이름하여 'VIP 신드롬'이다. 그런데 이 VIP 신드롬이란 게 부탁하는 사람이 아주 가까운 사람이거나,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부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잘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저런 부탁전화 없이 의사들이 평소에 하던 대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치료하는 환자들에게는 잘 생기지 않는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이런 분들에게는 왜 이리도 잘 생기는지.

하지만 의외로 이 VIP 증후군의 원인은 過猶不及(과유불급)에 있다. 말 그대로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것이다. 의사가 너무 부담감을 느낀 결과, 주위 동료나 가까운 지인들을 의식해서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쓴 탓이다. 사람이란 부담감이 크면 그만큼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세상 이치거늘….

언론에서 올림픽이나 그 밖의 큰 국제대회에서 시합 전부터 금메달이 기대되느니 어쩌니 하는 선수나 종목에서는 꼭 우리를 실망시키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데서 금메달이 나오듯이, 치료도 마찬가지이다. 평소대로 조금 미흡한 듯 수술을 끝냈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을, 완벽을 꾀한다고 필요 이상의 시술을 시도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우리 몸은 조금의 모자람이 있어도 스스로 다 알아서 보충해 준다. 진단과 투약도 마찬가지이다. 부탁이 많은 환자일수록, 그리고 환자가 유명한 사람일수록, 진단에 혼선이 생기곤 한다. 약을 사용할 때도 너무 성급하게 처방하거나, 필요 없는 부분까지도 증상을 없애게 되어, 환자의 증상이 가려지니 오진을 하게 되거나 본말이 전도된 치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VIP 증후군이 비단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에서만 생기는 것일까? 우리는 그동안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증후군들을 보아왔다. 올림픽이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유망주며 우승 가능성이 높다고 언론매체에 대서특필되는 선수가 의외로 초반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건도 그렇다. 너무 호들갑스럽게 유치전을 펼친 건 아닌지. 좀더 조용히 그리고 내실있게 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사회는 이제 선진화를 지향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나 국민 개개인이 너무 한가지 일에 성급하게 일희일비하지 말고 반 박자 정도 늦추어가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 모자란 것이 넘치는 것보다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민병우(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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