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팩션 선거

팩션이 유행이다. 사실(팩트)과 허구(픽션)를 합성한 팩션은 소설에서 시작해 대중문화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소설에서 성공한 칼의 노래, 남한산성, 능소화, 리진 같은 작품이 그런 류다. 영화 쪽은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가 관객 1천만 대박을 터뜨렸다. 안방극장에서는 대조영, 주몽, 해신, 불멸의 이순신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역사적 사실이 녹아 있는 얼개를 바탕으로 깔고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허구의 오락성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이다.

사실 진짜와 가짜가 버무리는 팩션의 위력은 영리한 정치 쪽이 먼저 알아봤다. 대개 팩션의 형태를 띠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그것이다. 미국 선전분석연구소는 네거티브 이상 유권자에게 잘 먹혀드는 것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먼저 얼마간의 사실성(half-truth)을 근거로 해서 아리송한 의혹을 분칠한다. 그런 다음 고약한 이름을 갖다 붙인다. 스캔들, X파일, 게이트 같은 꼬리표다. 그러고 나면 이 이상 유권자를 '한 방'에 녹이는 무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100% 사실보다 적당히 허구를 입힌 팩션의 네거티브가 더 매혹적인 전파력을 갖는다는 얘기다. 미국의 200년 정치사는 그런 팩션 선거의 점철이다.

우리도 언제부터인가 선거철에는 팩션이 범람한다. 손톱 만한 사실이라도 걸칠 수 있다면 과장과 왜곡의 '의혹' 이름표를 단다. 법적 문제도 신경 쓰지 않는다. 완전 날조가 아닌 다음에야 유권자 알권리와 후보 검증이라는 묘한 논리가 적극 옹호한다. 이회창 씨가 두 번이나 실패한 것도 팩션 때문이었다. 두 아들이 병역을 마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상대 쪽은 상상 가능한 허구를 총동원해 유권자의 분노를 끌어냈다. 죽자고 병역 미필의 이유를 대도 아무 소용없었다.

이번에도 긴가 민가 하는 의혹 시리즈들이 선거판을 장악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어디까지 사실이고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의혹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래도록 의혹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당수는 팩션일 가능성이 많다. 물론 본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아니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결론 없는 팩션이 더 치명적인 법이다. 대중적 흥미와 공분을 노리는 속성상 팩션은 두고두고 후보 곁을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빌미를 준 지난날을 자책하는 수밖에 더 있을까 싶다.

김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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